‘미륵의 마음, 모악산 금산사’ 특별전시를 다녀와서
교무부 김현진
<사진 1> 1910년 촬영된 금산사 미륵장륙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도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금산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장소이다. 이러한 금산사와 관련하여,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미륵의 마음, 모악산 금산사’를 주제로 2024년 5월 5일부터 8월 18일까지 특별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는 전라북도가 특별자치도로 지정(2024년 1월 18일)된 것을 기념하여 미륵신앙의 성지인 ‘금산사’와 ‘미륵’을 전북의 대표 문화재로 선정하고 기획한 특별전시였다. 전시 내용에서 상제님의 자취를 느낄만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전시는 금산사의 변천사와 미륵장륙상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백제 때 건립된 후 통일 신라 시대에 진표율사(眞表律師, 717년 또는 733년~?)에 의해 미륵전과 미륵장륙상이 세워지면서 미륵신앙의 성지가 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혜덕왕사(慧德王師, 1038~1096)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규모 가람으로 중창된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 때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활동한 승려들의 활약상과 전쟁이 끝난 후 불타버린 금산사와 미륵장륙상에 대한 재건 기록을 다루었다. 이후 재건된 미륵장륙상이 1935년에 다시 불에 타 소실된 것을 조각가 김복진이 복구하는 과정도 그렸다. 마지막으로 3D프린팅으로 미륵장륙상의 얼굴을 제작한 현대 예술가의 작품과 함께 미륵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하고 있다. 전시를 살펴보니 흑백의 미륵장륙상 <사진 1>이 눈에 띄었다. 전시되어 있던 <사진 1>의 연도는 1910년이라고 되어 있었다. 연도를 보고 나니 ‘상제님께서 강세하시기 전에 임어하셨던 미륵금불이 바로 사진 속의 미륵장륙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산사는 정유재란(1597~1598) 때 미륵전과 함께 전소된 후, 수문 대사가 1601년부터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미륵장륙상은 1626년경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01 이 미륵장륙상은 이때부터 1935년 3월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금산사 미륵전에 모셔져 있었다. 시기상으로 보았을 때 <사진 1>의 미륵장륙상은 상제님께서 30년 동안 임어하셨던 불상이 되는 것이다. 전시된 사진을 보니 기분이 몽글해졌다. <사진 1>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것을 광복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수한 자료이다. <사진 2>는 이번에 전시되진 않았지만, 1935년 미륵전이 소실되기 전 해에 찍은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2>는 <사진 1>보다 양옆의 두 보살이 선명하게 잘 보여 참고로 소개해 놓은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미륵불과 좌우의 협시불 그리고 양옆의 보살상이 같이 보인다. 이는 미륵불의 출세를 암시하는 날 출(出) 자 형상을 갖추고 있다.
<사진 2> 1934년 촬영된 금산사 미륵장륙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렇다면 상제님께서 강세하시기 전 30년 동안 미륵금상에 임어하셨을 당시 금산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금산사는 처음 백제 법왕 원년(599)에, 왕실에 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로 창건되었다. 이후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러 진표율사가 미륵전과 미륵장륙상을 조성하면서 미륵신앙이 널리 퍼져 대규모 가람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유재란으로 모두 불타버려 금산사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수문 대사에 의해 금산사와 미륵전이 재건되었는데 그 모습을 알 수 있는 전시물로는 1872년 금구현 지방지도와 ‘모악산 금산사도’가 있다. <사진 3>의 1872년 금구현 지방지도는 금산사를 관아가 있는 곳처럼 자세히 묘사하였고 특히 3층 미륵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당시에도 중요한 곳으로 여겼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진 4>의 ‘모악산 금산사도’는 금산사의 전체 모습을 상세히 담고 있다. 이 그림은 19세기 금산사의 실제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담고 있는데 상제님 강세 시에 활동했던 김정희의 제자 서화가(書畫家) 허련(許鍊, 1808~1893)이 그렸다. 그림을 보면 3층 전각으로 된 미륵전, 그 바로 앞에 대장전과 석등, 대적광전이 확인된다. 전각 주변으로 둥근 과실수나 잎이 넓은 나무에 초록 담채로 채색되어 있어 금산사의 봄 경치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3> 1872년 금구현 지방지도 일부(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사진 4> 허련이 그린 <모악산 금산사도>, (전북대학교박물관 소장)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대장전의 위치가 현재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상제님의 공사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전경』에 1908년 동곡약방을 설치하실 때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봉안한 석가 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02고 하셨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석가 불상이 모셔져 있는 전각은 대장전이었다. 대장전은 원래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목탑 양식의 전각이다. 정유재란 이후 수문 대사가 금산사를 재건할 때 현재의 미륵전 앞마당에 지어졌다. 그런데 보관하던 불교 경판과 경전이 유실되자 이후 석가모니불과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상을 안치하였다.
<사진 5> 이전하기 전 옛 금산사 대장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6> 1920년 촬영된 금산사 전경 (출처: 『일본지리풍속대계』)
『금산사관적도보』에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미륵전과 대장전을 보수하면서 대장전의 위치를 옮겼다는 기록을 보아 상제님의 공사 이후 대장전이 현재 위치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03 <사진 5>와 <사진 6>은 현재 위치로 옮겨지기 전 대장전의 모습이다. <사진 5>의 경우 대장전 오른쪽에 방등계단이 있어 옛 대장전의 정면과 방등계단이 나란히 위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 6>은 1920년에 촬영된 사진으로 당시 미륵전 바로 앞에 있던 대장전의 모습인데, <사진 7>과 비교해 보면 위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상제님께서 공사 보실 때 대장전에 모셔져 있던 삼존불상은 1955년에 군산 동국사 대웅전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불상은 새로 안치한 것이다. 전시를 천천히 둘러보며 금산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물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출구였다.
<사진 7> 2016년 촬영된 금산사 전경
미륵장륙상과 미륵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나니 금산사가 보고 싶어졌다. 전주박물관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오랜만에 금산사를 찾았다. 민중을 위로하고 희망의 안식처가 되어 준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장륙상에 읍배를 드리며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었던 ‘미륵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옛날 대장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넓게 조성된 미륵전 앞마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이번 국립전주박물관의 특별전시 관람을 통해 『전경』 속에서만 상상했던 내용을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자 상제님의 자취가 마음에 새겨지는 듯한 감흥이 들었다.
01 「금산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02 공사 2장 11절. 03 와타나베 아키라, 『금산사관적도보』 (국립중앙도서관, 1928),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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