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의 적, 사이비(似而非)
출판팀 한상덕
최근 인공지능은 인류의 삶 속에 스며들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ChatGPT라는 생성형 AI(인공지능)가 발표되자 세상과 인간의 삶을 바꿀 새로운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가상현실이나 가상 인간을 활용한 게임과 광고가 보급되고, 인공지능 그래픽을 이용하여 만든 가상의 가수들이 작곡가가 아닌 생성형 AI가 만든 노래를 유튜브에 공개하여 인기를 끌기도 한다. 하지만 인공기술의 발달과 함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대두되고 있다.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가짜 사진이나 목소리마저 만들 수 있게 되자 AI를 악용한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과 거짓이 불분명한 사이비의 시대에 사는 것은 아닐까. 닮았으나 다른 것을 ‘사이비’라고 한다. 사이비는 닮을 사(似), 말 이을 이(而), 아닐 비(非)가 모여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직역하면 닮은 듯하지만,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사물이나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단어는 요즘 종교를 대상으로 많이 쓰이는 탓에 현대에 만들어진 말로 오해할 수 있지만, 유교 경전인 『맹자(孟子)』 「진심(盡心) 하」 편에 나오는 맹자와 제자 만장(萬章)과 나눈 문답에서 유래되었다.
어느 날 맹자에게 제자 만장이 찾아와 “한 마을 사람들이 향원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일 터인데 유독 공자만 그를 ‘덕의 적’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라고 물었다. 맹자는 “그를 비난하려고 하여도 막상 들어낼 것이 없고, 꾸짖자니 꼬투리 삼을 만한 것이 없다. 세상 풍속에 따르고, 더러운 세속에 합류하니 어긋남도 없다. 가만히 처할 때를 보면 성실한 척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사람이 모두 그를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지만, 요순(堯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그런즉 ‘덕의 적’이라 한 것이다”라고 답하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같은듯하면서도 같지 않은 것, 즉 ‘사이비(似而非)한 것’을 싫어한다. 가라지를 싫어하는 것은 곡식의 싹이 혼동될까 두렵기 때문이며,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의로움을 어지럽힐까 두렵기 때문이며, 말을 예리하게 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은 믿음을 어지럽힐까 두렵기 때문이며, 정성(鄭聲: 정나라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음악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며, 자주색을 싫어하는 것은 붉은색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며, 향원을 싫어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01
인격을 갖춘 군자(君子)와 반대되는 인물을 소인(小人)이라고 한다. 소인은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기에 우리는 그들을 멀리할 수 있다. 하지만 향원은 다르다. 향원(鄕愿)이란 ‘동네에서 점잖고 중후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나쁜 뜻이 없었는데, 공자가 ‘사이비 군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면서 부정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향원을 덕의 적이라 했을까? 그 답은 외면수습에 있다. 공자는 향원이 군자인 척하지만, 내면의 덕이 진정한 덕이 아니어서 참된 덕을 어지럽힌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이비 행동은 사람의 진위(眞僞)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탓에 향원이야말로 덕의 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공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외형적 가식을 비판했다. 그는 진정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은 표현이나 가식은 인(仁)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식적인 품성을 가진 인간을 공자는 향원이라고 불렀다. 맹자는 향원에 대해 “비난하려고 해도 막상 들어낼 것이 없고, 꾸짖자니 꼬투리 삼을 만한 것이 없다”라고 했다. 맹자는 선의 근원을 마음 안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나 외에는 남이 들여다볼 길이 없다. 사회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지식으로 포장된 말과 행동일 것이다. 따라서 향원이 ‘덕의 적’인 이유는 향원이 타락한 군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향원이 선(善)으로 포장된 유학의 이상적 군자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진실되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도 외면수습하는 경우가 있다. 수도를 하는 과정에서 적당히 예를 지키고, 게으름이 들키지 않을 정도로 행동하며, 눈치를 보아 적당한 처세를 유지하는 향원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혹여 공자 시대의 향원이 지금 수도하고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도전님께서는 “수칙에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라 하신 뜻은, 기만으로 마음이 공허하면 말부터 실이 없어 이상을 구현하지 못하고 행동 또한 바르지 못하여져 일마다 허구성에 사로잡히다가 마침내는 위선자가 되어 허세로 일을 그르쳐 망치게 되니, 이것이 다 속이는 데서 비롯됨을 깨달아서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라고 하신 말씀”02이라고 알려주셨다. 따라서 마음을 속이는 것의 시작은 나 자신임을 자각하여 항상 정직과 진실한 자세로 수도하도록 노력해야겠다.
01 『맹자』 「진심 하」, 萬章曰, 一鄉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曰, 非之無舉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汙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 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口, 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鄉原, 恐其亂德也. 02 「도전님 훈시」 (1985.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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