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 탄강지, 전북 종교문화유산 선정을 맞이하여
교무부 이호열
▲ 상제님 탄강지
공자가 태어난 중국의 취푸(曲阜, 1994), 석가모니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1997),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2012) 등 성인(聖人)의 탄생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로부터 더욱 많은 사람이 현지를 방문하며 그 사상과 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흐름이다. 지난 9월 30일 전북 종교문화유산 심의위원회에서 ‘증산 강일순 탄생지’(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436)가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1호)’으로 선정된 것은 상제님 탄강지가 향후 대순사상을 잉태한 세계적인 종교적 성소(聖所)로 발돋움하기 위한 작은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북 도 차원에서의 종교문화유산 선정은 그 의미가 작지 않기에, 이번 선정을 계기로 상제님의 강세지01가 어떤 역사ㆍ문화적 배경이 있는지 되새겨보고, 종교문화유산 선정의 의의 그리고 향후 탄강지의 종교문화유산으로서 활용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강세지의 역사ㆍ문화적 배경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곳은 당시 행정구역으로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였다. 고부(古阜)는 ‘옛 언덕’, ‘첫 발상지’, ‘태고로부터 크게 융성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고려 태조 19년(936)에는 ‘영주(瀛州)’라 불리었다.02 지금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속의 고부면이라는 작은 행정단위로 남아 있지만, 오랫동안 전라도 제일의 곡창지대이자 행정의 중심지이며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로서 강세 당시에는 삼신산[방장산, 두승산(영주산), 변산(봉래산)]을 품고 있는 넓은 땅이었다.03
탄강지 인근 객망리(현 신월리)는 넓은 기름들[油野]에서 수확된 곡식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가을의 수확과 풍부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경』에는 상제님께서 1897년부터 3년간 전국 팔도를 주유하신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시루산에서 진법주(眞法呪)를 외우시고 오방신장(五方神將)과 48장(將), 28장(將) 공사를 행하셨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대원사에서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신 뒤 여기 객망리로 돌아오셔서 그해 1901[辛丑]년 겨울, 9일 동안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시작하셨으니,04 종단사 측면에서 이곳은 상제님의 탄강지이자 천지공사의 출발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탄강지가 자리한 전북지역은 조선이 성리학 일변도의 학문적 흐름을 이어간 데도 불구하고 유불선(儒佛仙)이 어우러진 다양한 종교 문화적 특성을 보여 왔다. 먼저 이 지역에서 16세기 초반에 형성된 호남사림(湖南士林)은 도학(道學)을 실천하며 절의(節義)를 중시하여 그들의 충절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어느 지역보다 더 애국적이고 충의로웠다.05 또한 불교에 있어서는 3층 석탑과 함께 절터가 남아 있는 익산의 미륵사와 함께 금산사가 중심이 되어 미륵 사상의 본원을 이루었고, 삼신산(三神山)이 자리하며 도사 남궁두(南宮斗, 1526~1620), 조선 단학의 대가 권극중(權克中, 1585~1659) 등의 인물을 통해 도교의 신선 사상이 풍미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곳은 보국안민ㆍ반봉건ㆍ반외세를 외치며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혁신운동으로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곳이다. 상제님께서 유불선음양참위(儒佛仙陰陽讖緯)를 통독하시고,06 “오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잡지 못하리라.”07라고 말씀하신 바도 있듯이, 탄강지를 포함한 인근 지역은 유불선의 다양한 흐름이 공존하며 시대의 변혁을 꿈꾸던 문화적 생명력을 가진 곳이었다. 이러한 역사ㆍ문화적 배경 속에서 새 시대를 향한 개벽과 상생의 사상이 주창되었던 것이다.
종교문화유산 선정의 의의
상제님 화천 이후, 여러 경전이나 구전 등에 나타난 상제님 생가터의 위치가 서로 달라 오랫동안 상제님의 탄강지는 그 정확한 위치가 불분명하였다. 이에 여주본부도장 교무부는 2012년부터 본격적인 답사와 증언 및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그 위치를 탐색하였고, 여기에 학자의 관련 학술 연구를 더하여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436번지가 상제님 탄강지임을 확인하였다. 이후 탄강지는 2021년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22호로 지정되었고, 이번에 전북 종교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전북특별자치도는 가치 있는 종교문화유산을 발굴해 지속 가능한 보존ㆍ활용 방안을 마련하고자 「전라북도 종교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2023)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여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번 심의 및 선정은 역사ㆍ건축ㆍ문화유산 전공 교수 및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이 참여하여 근대 한국 민족종교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탄강지의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공인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증산계 교단은 민족주의 성향으로 인해 총독부로부터 ‘유사종교’로 분류되었고 그러한 사회적 편견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그 시기를 지나 1970, 80년대 선구적인 학자들의 연구가 지속되며 상제님 사상의 핵심인 해원상생(解冤相生) 사상이 점차 알려지고, 한ㆍ중수교(1992) 이후 정부의 외교정책은 “한중(韓中)간의 상생(相生)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방향성을 제시하며 중국과의 적극적인 교류와 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 이후 ‘상생(相生)’이라는 키워드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미래가치로 등장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분야에 확산되면서 새 시대의 흐름을 열어나갔다. 그리고 2012년부터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 상제님께서 구한말의 민족종교의 창시자로 소개되며 교육부에서 인정받았고, 그 탄강지가 전북 도가 인정하는 종교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으니, 이제 사회ㆍ문화적 공인과 함께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공개되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번에 상제님의 탄강지가 전북 도의 종교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은 일반 대중들이 우리 역사에서 증산계 교단을 의미 있는 종교문화의 주체로 인식하는 계기가 확장되는 것이며, 상제님의 탄강지가 증산계 교단만의 유산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보호해야 할 유산으로서 그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08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 다양성 인정의 경향도 이번 탄강지 종교문화유산 선정의 배경에 자리한다. 유네스코(UNESCO)는 세계화와 더불어 전 지구적 규모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평화와 국제 협력을 목표로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2001)을 하였고, 이에 따라 ‘문화 다양성’ 개념은 국제 사회에서 교육, 과학, 문화 부문의 핵심 개념이자 화두로 부상하였다.09 이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우려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긴장 또는 종교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으며,10 이러한 유네스코의 선언은 이후 국내에서의 문화 다양성 또는 종교 다양성을 인정하는 추세로의 전환에 영향을 주었다. 이미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 사상의 깊이와 독창성이 알려져, 한국의 민족종교 사상으로서 상제님의 사상에 대해 여러 지식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긍정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탄강지가 국가유산이나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려면 더욱 폭넓은 대중적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식의 깊이가 다른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학술적 노력을 통해 좀 더 쉽고 간결하게 사상을 요약하여 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 대순진리회의 사회적 기여와 학술연구의 결과를 좀 더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과제가 남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활용 방안
종교 전통을 포함한 문화유산의 대중적 공개는 세계의 보편적 추세이며 거기에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적 역량이 드러난다.11 전북 종교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상제님의 탄강지를 복원하고 관리하여 앞으로 대중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우리 종단의 문화적 역량과 미래 전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탄강지에 담긴 종교 문화적 메시지를 넘어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모습 또한 대중들에게는 작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것은 탄강지에 함의된 종교성을 포함하여 상제님의 역사ㆍ문화적 영향과 평가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종단은 앞으로 종교문화유산을 토대로 하여 대사회적으로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발판과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동학을 믿지 않더라도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의 사상이나 영향을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과정에서 조선 말 역사적 인물로서의 수운을 긍정하고 후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민족종교로서 한국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를 많은 사람이 인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포덕사업과 덕화선양(德化宣揚)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종교문화유산으로서 탄강지와 인근 성적지(聖蹟地) 답사 활성화, 그리고 그 시설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강세지를 중심으로 한 성적지 답사는 교화(敎化)의 현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유용(有用)하다. 특히 탄강지 인근에 기념관 건립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방면의 수도인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인들이 탄강지를 방문하였을 때,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설명에 도움이 될 전시물과 강의실, 회의실 등 관련 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상제님에 대한 역사 문화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종교성이 짙은 내용보다는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의 관점에서 역사적 측면으로 무극도를 포함한 일제강점기 증산계 교단의 민족운동 등에 관한 설명이 연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적 측면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상생 운동 및 문화가 상제님의 상생 이념으로부터 기원하였음이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전북 및 정읍지역 학자 및 지역민과의 유대와 연대 의식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종교문화유산으로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면 먼저 전북이 낳은 대종교가로서 상제님에 대한 지역민의 우호적 지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전북 및 정읍지역 학자들과의 학술교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며, 종단의 구호자선 및 장학사업을 전북 및 정읍지역에 확대하여 지역민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023년 5월,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총 185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동학에 대한 대중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인식을 넓히는 데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볼 때, 앞으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이라는 사회적 공인과 토대도 포덕천하를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종단의 발전은 앞으로 얼마나 ‘사회적 인망’을 폭넓게 획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인망을 얻는 일에 포덕, 교화, 수도의 기본사업과 더불어 3대 중요사업이 중요하듯이, 작은 생각과 실천의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종단의 종교문화유산 관련 지원과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01 이 글에서 탄강지는 생가터(탄생지)를 가리키며, 강세지는 탄강지를 포함하여 시루산과 인근 성적지(聖蹟地)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02 김태웅, 「현대 고부인이 되찾은 고부군의 사화(史話)」,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 03 이호열, 「고부와 삼신산」, 《대순회보》 243호 (2015), p.30 참고. 04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26):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시작하시다」, 《대순회보》 90호 (2008), p.16 참고. 05 박인규, 「상제님 강세지에 대한 공간적 의미 고찰」, 《대순회보》 149호 (2013), p.106 참고. 06 행록 2장 1절. 07 예시 73절. 08 류호철, 「종교 문화유산의 가치 인식과 선제적 보전 기반 마련」, 『대순사상논총』 48 (2024), pp.359~361 참고. 09 전종한, 「유네스코 ‘문화 다양성’ 개념의 함축과 ‘세계지리’ 과목에서의 실천 방안」, 『대한지리학회지』51-4 (2016), p.560 참고. 10 전종한, 같은 글 참고. 11 김진영, 「세계유산 관점에서의 대순진리회 도장의 가치」, 『대순사상논총』 35 (2020), p.39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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