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에 담긴 정성
출판팀 임정화
올해도 어김없이 동짓날 도장에서 팥죽을 먹는다. 그런데 팥죽 먹는 시간이 매년 다르다. 왜냐하면 매해 동지가 시작되는 입기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는 1년 동안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이 궤도를 황도(黃道)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동지를 절기의 시작점으로 하여 황도를 따라 15°마다 24절기를 하나씩 정했다. 절기 간 보름 정도의 간격이 있는데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기 때문에 주기가 일정하지 않다. 현재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춘분점을 황도의 기준으로 하여 각 절기에 이르는 순간을 정밀하게 계산해 날짜와 시각을 알려준다. 그에 따라 작년에는 동지가 양력은 12월 22일이고 음력은 11월 10일이며 시각은 12시 27분이었는데, 올해는 양력은 12월 21일이고 음력은 11월 21일이며 시각은 18시 21분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도장에서 동지 팥죽 쑤던 날 취재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신생활관 식당에서는 동지 이틀 전부터 팥죽을 준비한다. 매년 팥죽을 담당해 온 종사원이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찹쌀과 멥쌀을 섞은 쌀가루를 적당한 점도로 익반죽한다. 쌀가루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을 조금씩 넣어 수시로 손으로 뭉쳐본다. 건조한 실내에서 빚으니 제대로 뭉쳐지지 않고 가루가 많이 나올 것을 고려해 약간 질게 한다. 외수들이 반죽을 주무르고 치대서 부드럽게 만든 후 마르지 않게 비닐에 넣는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내수들은 비닐 속 반죽을 떼어 새알심을 빚는다. 반죽을 길게 만들어 빚기 좋게 떼어주기도 하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소원 빌듯 두 손 모아 빚기도 하고, 양손에 한 알씩 혹은 한 번에 두세 알씩 빚기도 한다. 빚어 나온 것이 참새알보다 작다며 견본을 보여주며 일정하게 만들어달라고 종사원이 요청한다. 새해 소망을 담아 한 알 한 알 신경을 써서 빚는 도인들의 마음이 동그란 새알심으로 정갈하게 쟁반을 채워간다. 새알심으로 꽉 찬 쟁반은 장독대로 가져간다. 장독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 위로 새알심 쟁반이 차례차례 올려진다. 동지 때 날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 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전날부터 눈이 내린 것이 길조로 여겨진다. 영하의 날씨라 새알심이 살짝 얼면서 금방 굳으니, 저물녘에 걷어 보관하기 좋은 것은 덤이다. 다음날에는 붉은 팥을 씻어 불순물을 제거 후 물을 부어 푹 삶는다. 팥죽에서 ‘팥 삶기’는 꽤 긴 시간과 세심한 불 조절이 요구되는 까다로운 과정이다. 자칫하면 떫거나 시큼한 맛이 날 수 있다. 완전히 으스러질 정도로 팥을 푹 삶기 위해 내내 지켜봐야 한다.
처음에는 센 불로 시작한다. 보글보글 물이 끓으면 솥 앞에 서서 팥이 골고루 익게 긴 나무 주걱으로 팥을 뒤집어 주듯이 저어준다. 센 불로만 끓이면 팥이 안 퍼져서 중불로 조절한다. 지켜보다가 주걱으로 팥을 떠서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여러 개 눌러본다. 아직 더 익혀야겠다며 줄어드는 물을 조금씩 보충하며 바닥이 눋지 않도록 자주 저어준다. 여러 번 주걱으로 팥물을 떠서 기울여 보고 손가락으로 팥 알갱이 몇 개 눌러보고 불을 점점 줄여본다. 어느 순간 둥근 팥 알갱이가 손끝에 쑥 눌리는 때가 있다. 팥물도 차츰 걸쭉해져서 용암이 분출하듯 솟구치며 끓어오른다. 물을 조금씩 더 붓고 약불로 조절한다. 팥물의 붉은색은 점점 짙어지고 나무 주걱을 잡은 외수의 이마엔 땀이 흐른다. 불을 끄고 삶긴 팥을 갈고 나니 구수한 팥 향이 사방에 진동한다. 동짓날, 전날 갈아놓은 팥물을 큰 솥에 넣고 다시 끓인다. 주걱을 잡고 천천히 바닥이 눋지 않게 고루고루 젓기 시작한다.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끓이다가 씻어놓은 찹쌀을 넣는다. 김이 펄펄 나기 시작하며 팥물은 팥죽이 되어간다. 이때 물을 더 부어주고 간을 봐가며 굵고 하얀 소금도 흩뿌린다. 시간이 지나 찹쌀이 익어 점점이 떠오른다. 반 정도 익었을 때 새알심을 넣는다.
팥죽을 처음 쑤어본다는 외수는 주걱을 잡고 솥 가장자리 밑으로 쓱 밀어갔다가 가운데로 쭉 당겨오며 끊임없이 젓고 있다. 볼이 벌겋게 팥죽땀을 흘리는 수고로움으로 팥죽이 완성되어 간다. 어느새 솥 한가득 새알심이 떠올랐다. 새알심을 떠서 좀 더 퍼지게 할지 인제 그만 불을 끌지 세심하게 살핀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설탕을 넣는다. 우리 민족은 붉은색 밝은 기운으로 동짓날의 음기를 다스려서 액운을 막고자 팥 음식을 해 먹었다. 어머니들은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의 건강과 무사태평을 빌며 붉은 팥으로 음식을 했다. 신생활관 식당도 이런 마음으로 도인들이 먹을 팥죽을 준비했다. 음복 때 동치미와 함께 나온 짙붉은 빛깔의 팥죽. 뜨끈하고 맛있는 팥죽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담겼는지가 오롯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 안에는 새해에도 벽사를 통해 앞길을 잘 헤쳐 사업이 잘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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