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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이해를 위한 공감과 성찰

이해를 위한 공감과 성찰

 

 

교무부 강대성

 



  도전님께서 “해원상생을 생활해 나가려면 이해를 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01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해원상생을 실천해가는 데 있어서 이해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해(理解)’에 관한 명언 중에 ‘모든 것의 시작’, ‘이성과 감정의 집합체’라는 말이 있다.02 여기서 감정은 이성과 대비되는 감성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덕목이며 이를 위해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상에서 어떠한 상황이나 타인을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따라서 외부 상황이나 타인을 이해하려는 진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원활한 이해를 위해서는 감정이나 정서에 대한 감성적 공감과 더불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이성적 성찰이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해원상생의 측면에서 온전한 이해를 위한 공감(共感)과 성찰(省察)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해(理解)’는 조선시대에 주로 ‘해(解), 이회(理會: 깨달아 앎)’라는 단어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03 이는 공감하여 이해한다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근대 이후 문헌에서 이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1898년 ‘리 분별(이해분별)’이란 제목으로 《독립신문》에 게재되었으며04, 1901년 《황성신문》에 ‘理解’란 한자어가 나타나고 있다.05
  ‘이해’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등이다. 여기서 이해는 이성을 위주로 하는데, 감성적인 공감이 바탕이 될 때 온전해진다. 흔히 이성적인 면은 머리에 감성적인 면은 마음(가슴)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공감하지 못하여 온전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공감이 필요하다.



  우선 공감에 대해 살펴보면, 도전님께서는 “‘남이 나의 뺨을 때리면 그 손을 어루만져 주라’는 말씀도 있듯이 우리 도인들은 타인에 대해 해원상생의 진리로 이해하는 생활태도를 간직하여야 합니다.”06라고 하셨다. 뺨을 때린 가해자는 이전에 나로부터 피해를 본 일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뺨을 맞은 피해자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먼저 가해자의 상처받았던 심정을 공감하여 이해한다면 자신의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대의 마음을 먼저 풀어주어야 한다. 이처럼 상대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여 해원상생을 실천해야 한다. 해원은 억눌린 감정 상태 또는 정서인 ‘원(冤)’에 관한 것이다. 이는 곧 해원상생이 타인의 감정이나 정서에 대한 공감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해원상생은 척을 짓지 않고, 척이 있다면 푸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척이 되는 타인의 서운한 감정을 공감하여 이해해 보아야 한다.
  공감은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는 뜻으로 상대의 처지에서 그 느낌이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에 대해 살펴보면 유럽의 경우 인간이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감정을 함께 공유’함을 근대에 이르러 구체적 개념어인 공감(empathy)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07 18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남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치유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타인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 공감이라는 심리적 과정을 학문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다.08
  인공지능(AI), 즉 기계는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감이라고 하였다.09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인공지능(AI)도 공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입력된 정보에 대해 인식하는 정도이며, 사랑과 애착이 없는 AI는 상대방의 실제 감정을 구별하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사람의 능력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중의 하나가 공감이다.10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인데, 바로 정서의 모방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11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느낀다는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 그 사람의 정서 표현을 그대로 모방할 때 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경』 구절이 있다.

 

상제께서 천원(川原)장에서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크게 고통하는 공우를 보시고 가라사대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 공우가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라.


(교법 3장 12절)

 

 


  위에서 박공우 종도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상대를 찾아가 복수하겠다고 결심했으나 그가 지은 척이 상대에게 붙어 해를 입힌 것이니 그를 은인과 같이 여기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듣고 감복한다. 박공우가 감복하여 상대에 대한 미움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상제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먼저 가해자에게 주었던 고통을 공감하면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는 상제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허물을 살펴 뉘우치는 성찰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성찰은 자신을 돌아보아 반성하고 살피는 것을 말한다. 반성은 자신의 마음이나 언행 등에 대해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이는 곧 역지사지의 자세로 객관성 있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이성적 이해 과정에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제삼자의 관점에서 편견과 오만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자기 객관화 과정이다.12 이러한 성찰은 인간관계에서 무엇보다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서로 배척하고 충돌할 수 있는 상극적인 상황을 미리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해를 위한 공감과 성찰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해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수도에 있어서 주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에 대해 표면적으로 이해한다고 하지만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아마도 적극적으로 타인과 자신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차츰 서로 원망과 미움이 해소되어 해원상생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01 「도전님 훈시」 (1991. 4. 20).
02 문재익, 「이해(理解)와 오해(誤解)」, 《중앙신문》 2024. 5. 18 재인용.
03 『성종실록』 215권, 성종 19년 4월 12일 을사(乙巳) 2번째 기사, “김석산이 아뢴 바의 진위는 관상감 제조 및 풍수를 이해하는 재상인 서거정…”(石山所啓眞僞, 令觀象監提調及解風水宰相徐居正…); 『정조실록』 3권, 정조 1년 2월 1일 정유(丁酉) 4번째 기사, “아무리 소인이 용사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3년 동안의 전쟁에서 어떻게 한 사람도 공을 이룬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는 반드시 그렇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등등의 일에 대해 똑바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小人雖用事, 三年興師, 豈無一人成功者乎? 此必有所以然之. 此等處正合理會).
04 《독립신문》 1898. 8. 12. 3면, “리 분별- 엇던 친구의 편지를 좌에 긔 노라(이해분별- 어떤 친구의 편지를 왼쪽에 기재 하노라)…”(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
05 《황성신문》 1901. 11. 04. 2면, “搖岩理解世界中에…”(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
06 《대순회보》 29호, 「도전님 훈시」.
07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경기: 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15), p.155 참고.
08 제러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 이경남 옮김 (서울: 민음사, 2010), pp.18-19 참고. 공감에 앞서 서양의 경우 유럽 계몽주의 시기에 동정(sympathy)이란 단어가 유행하였다. 이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타인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했다.
09 김현지, 「AI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무기…그것은 ‘共感 능력’」, 《대한경제》 2016. 10. 12 참고.
10 조동찬, “AI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넘어설 수 있을까? 실험해 보니” - SBS 뉴스(2024. 1. 14).
11 김정운,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흉내 낸다고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조선일보》 2014. 6. 27 참고.
12 한상열(고려대 명예교수), 「“자신을 남처럼 바라본다.”…자기 객관화 해야 인생의 지혜가 생긴다.」, 《글로벌이코노믹》 2021. 6. 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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