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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도덕적 용기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도덕적 용기

 

 

교무부 주소연

 



  우리 수도의 목적은 도통인데, 도전님께서 “수도는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것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01라고 하셨다. 이처럼 도통이 인륜을 바로 행하는 도덕의 실천에 달려있는 만큼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서 마음을 닦는 노력, 즉 사심을 극복하고 양심으로 돌아가는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실천에는 때로 용기가 필요하며 이를 오늘날 윤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용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02 용기는 기본적으로 두려움이라는 정서를 극복하는 덕목으로서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용기가 있다”라고 하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도덕적 용기’는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불의(不義)에 맞서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수도에서 필요한 도덕적 용기를 좀 더 확장적인 의미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도덕을 실천하는 용기에 대해 동서양 성인들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다. 공자는 “어짊(仁)이 있는 자는 반드시 용기가 있다”03라고 하고, “의(義)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04라고 하여 인의(仁義)라는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덕으로서의 용기를 말하였다. 즉 도덕적 행동을 위한 용기는 덕을 실천하는 의지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덕적 용기는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바른 행동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귀한 일을 저버리는 수치스러움을 두려워하듯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용기’라고 하였다.05 맹자는 스스로 돌이켜보아 부끄럽지 않음으로써 비롯하는 것이 용기라고 말하였다.06 이처럼 도덕적 용기는 두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의(義)를 위해 행동하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는 의지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수도에서 이러한 도덕적 용기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덕적 용기가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적 가치가 무엇이고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용기를 내어 실천할 도덕적 가치는 해원상생(解冤相生)이라고 할 수 있다. 해원상생은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의 원리이자 우리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삶의 원리를 가리킨다.07 그렇다면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데 있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나 장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욕심은 꼭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바르지 못한 마음이며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마음에 있는 사심은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고, 이것 때문에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해원상생을 위한 도덕적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도에서 극복해야 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순진리회의 도인에게 도덕적 용기는 ‘자기만 생각하는 욕심을 극복하고 해원상생을 위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할 수 있다. 수도 과정에서 도덕적 용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경우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바른말을 하는 용기이다. 인간사회의 여러 상황에서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말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친한 사람이지만 그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을 걱정하여 그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직장 상사의 경우 꾸지람을 듣기 두려워서, 또는 어떤 조직에서 배제될 것을 두려워하여 뭔가 바른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바른말을 하는 데 있어 상극적인 상황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듣기 싫더라도 바른말을 해야 상대방과 주변 관계에 해원상생을 이룰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단지 듣기 싫은 말을 하기 싫거나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해서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적인 마음에서 의(義)를 저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한 충신들이 있다. 그런 충신이 사라지고 자기 이익을 위해 임금에게 아부만 하는 간신들이 득세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또한 오늘날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의 상황에서 그러한 불의를 밝히는 바른말을 하지 못하여 문제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용감하게 문제를 제기하여 상황이 밝혀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내가 바른말을 해서 당장은 상대의 귀에 거슬릴 수 있지만 이를 받아들여 그가 달라진다면, 척을 짓지 않게 되어 오히려 그에게 약이 되고 상황을 바로잡아 많은 사람을 잘 되게 할 수 있다.
  둘째,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못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도덕적 행동이 될 수도 있고 비도덕적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이때 잘못을 인정하는 것 자체도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잘못을 알리고 인정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특히 잘못을 인정할 경우, 자기의 명예와 권위를 해치거나 경제적 불이익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덮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배신하는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지만 그것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욕심 때문에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 것이다.
  상제님께서 “덕무이명 과징비식(德懋耳鳴 過懲鼻息)”08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덕은 소리 없이 행하되 잘못은 감추려 들지 말고 공개하여 다시는 그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09 하지만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은 분명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용기를 내어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감당하거나 상대방에게 사과한다면 그것이 상대방과의 원을 풀어 서로 잘 되는 일이며, 그것을 계기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반성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셋째, 남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이다. 남을 돕고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의지와 힘으로서의 용기라고 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요람』 「훈회」의 설명에 “남을 위해서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10라고 하였는데 남을 돕는 일은 나의 노고가 필요한 일이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남을 잘 되게 하는 용기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전명숙(전봉준) 등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에서 모범을 볼 수 있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 부도덕한 일에 방관하는 일이 많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나서는 사람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남을 돕다가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칙」에 “남이 나의 덕을 모름을 괘의치 말라”11는 가르침과 같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진실하게 도덕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 일상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욕심을 극복하여 올바르게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도덕적 가치관이 희미해지고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남들도 다 하는데’ 또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사소한 일상의 도덕을 실천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도덕을 실천하는 각자의 의지와 노력이 세상을 해원상생의 지상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욱 용기를 내어 마음을 바로잡는 도덕적 실천이 중요하며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모범이 되는 길이고 목적한 바인 도통을 이루는 길일 것이다.  

 

 

 

 


 01 『대순지침』, p.37.
02 고미숙, 「도덕적 용기의 개념에 대한 재고」, 『윤리연구』 103 (2015), p.275 참고.
03 『논어』, 「헌문(憲問)」, “仁者必有勇.”
04 『논어』, 「위정(爲政)」, “見義不爲, 無勇也.”
05 아리스토텔레스, 강상진 외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울: 도서출판 길, 2011), pp.102-103.
06 『맹자』 「공손추(公孫丑)」, “옛날에 증자가 자양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나는 일찍이 큰 용기에 대해 공자께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올바르지 못하다면, 비록 허름한 옷을 입은 천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보아도 올바르다면, 비록 천만 인일지라도 가서 대적하겠다.’라고 하였다.”(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07 『대순진리회요람』, pp.8-9 참고.
08 교법 3장 47절.
09 교무부, 「덕무이명, 과징비식(德懋耳鳴 過懲鼻息)」, 《대순회보》 7 (1987), p.9 참고.
10 『대순진리회요람』, p.20.
11 『대순진리회요람』,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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