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이번 생은 더 잘 부탁해
부평7 방면 선무 박선민
웹툰이 원작인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는 드라마는 전생을 기억하는 ‘반지음’이 주인공이다. 반지음은 현재 19회차 인생을 살고 있다. 매번 생마다 9, 10살이 되면 겪지 않은 일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게 되고, 그녀는 그 기억이 전생인 것을 알게 된다. .jpg) 전생을 아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생의 기억은 그녀를 괴롭게 만든다. 지난 생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하고 죽을 때의 공포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또한 빠른 윤회는 전생의 인연들이 살아 있기에 그리운 마음에 그들을 찾아가지만, 그들에게 그녀는 생판 모르는 남일 뿐이다. 전생의 기억이 좋은 점도 있다. 댄서로 살았던 삶 덕분에 배우지 않아도 탱고를 잘 추고, 장군으로 살았던 생의 기억은 싸움에 처하여 여유롭고 배짱 두둑하게 대처하게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은 ‘부럽다’였다. 전생을 알고 있다면 내게 엮인 인연의 실타래도 알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도, 용서도, 가끔의 지겨움도, 항상 남은 미련도. 이유를 안다면 기꺼이 해결하지 않겠는가? 더더욱 이기적 성격인 나에겐 ‘남을 잘 되게 하라’는 훈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였다. ‘나랑 무슨 인연인지도 모르는데 남이 잘되기를 빌어줘야 한다고?’ 마음을 먹어보려다가도 나와 상극인 사람에게는 순간순간 저항이 생겼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몸의 기억’이었다. 앞의 생에서 배우고 닦아 습득한 기술과 재능들, 외국어나 예술은 물론이고 기획력, 대화술, 심리 파악 등 해봤던 것은 그 능력을 바로 발휘할 수 있다. 삶의 적응도가 바로바로기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쉽게 해결한다. “저는 뭐든 잘해요!” 하는 사람을 어디서 마다하겠는가. 그녀의 인생은 너무 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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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편 영상 캡쳐, 유튜브
우리는 왜 전생을 기억하지 못할까? 드라마에 나온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보통 잘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힘든 인연과 겁액의 고리에 엮여 원인이 무엇이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몰라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렇듯 과거의 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현생의 인연이나 겁액은 맺은 걸 풀거나 이유를 깨닫지 못하면 쳇바퀴처럼 반복된다고 한다. 좋은 인연이야 그렇다 쳐도…, 한숨이 났다. ‘어쩌면 실패로 끝날지도 모르는 삶을 여러 번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꼭 힘들게 고생하며 깨달아야만 할까?’, ‘깨달음이나 고생 없이 그냥 누리고만 살면 안 되나?’ 하는 의문은 수도를 하면서도 풀리지 않았다. 힘들고 지치고 의심이 들 때면 이렇게 투정을 부렸다. ‘모르는 전생도 앞으로의 생도 내 알 바 아니고요. 그냥 이번 생은 좀 쉽고 편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드라마 제목에 마음이 간 것도 그래서였나보다. 내 눈엔 ‘이번 생은 편안하게 잘 부탁해요’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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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영상 캡쳐, 유튜브
그런데 삶은 그렇게 안 된다. 각본처럼 잘 짜진 사건과 인연들, 그리고 내 기질과 성격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숙제들로 남아 사사건건 내 발목을 걸고 앞길을 막는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기억이라도 나야, 힌트라도 있어야 방법을 찾아볼 텐데, 막막했다. 나는 주인공이 전생을 기억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했다. 그녀는 천 년 전 어느 생에서 병을 앓는 언니를 살리려고 사람들이 천제(天祭)를 올릴 때 사용하는 ‘신물(神物)’을 훔친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잡히고 그녀가 눈물로 호소하지만, 사람들에겐 천제가 목숨보다 중요하기에 그녀에게 칼을 겨눈다. 그녀는 울부짖는다. “하늘도 사람이 있어야 하늘인 것 아닙니까?” 하고. 눈앞에서 언니는 죽임을 당했고, 주인공은 천년을 가도 잊지 않고 다시 태어나 복수하겠노라고 저주한다. 그녀는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 ‘그저 사람을 살리고자 했던 것인데’라고 독백한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울컥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어쩌면 내 삶의 답도 여기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그녀가 전생을 기억하는 답이 여기에 있었구나. 반지음이 타인이 아닌 그녀 자신이 걸었던 주문으로 천 년 동안 전생을 기억하고 왔듯이, 내가 도를 닦는 이유도 나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서원(誓願)이었을 것이다. 이 서원이 나를 도로 이끌었고, 나에게 평생 했던 질문인 ‘왜 사는가?’의 답이 지금 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받아들여졌다. 해답에 필요한 길이 바로 인연과 겁액이었다. 이 힌트로 포덕하며 해원으로 보은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면 딴 길로 빠질까 싶어 하늘이 배려 차원에서 망각하게 해주신 건 아닐까? 반지음의 이번 생의 목표는 한가지. 이전 생에서 죽음으로 헤어진 ‘문서하’를 다시 만나고, 문서하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바로 앞의 생에서 그녀의 이름은 ‘주원’이었고 엄마 친구의 아들인 문서하와 친해진다. 둘은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녀는 문서하를 몸으로 막아준다. 이후 문서하는 눈앞에서 죽어간 주원을 못 잊어 죄책감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주원의 삶을 마감하고 다시 태어난 반지음은 문서하를 찾아간다. 문서하는 자기보다 어리지만, 누나처럼 챙겨주고 아껴주는 반지음에게 설명할 수 없는 낯익음을 느끼고, 우여곡절 끝에 마음을 연다. 그녀는 문서하를 조건 없이 받아주고 살펴주며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로맨스 드라마로는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나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뭐든 잘하는 사람이 나라와 인류를 구하는 원대한 목표를 추구해야지, 기껏 사랑 따위에 만족한다고? 겨우 한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게 뭐라고 저러는 걸까? 그런데 그랬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관심, 공감, 다정한 말 한마디, 쓰다듬는 손길, 따뜻한 웃음 이런 것이 사람을 달라지게 한다. 어둡던 문서하가 밝고,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천 년 동안 이어진 한의 매듭이, 누군가에게 하는 복수로 풀리는 게 아니었다. 한이 풀리는 첫 번째 고리는 외로운 누군가의 옆에 있어 주겠다는 작은 마음이었고, 겁액을 푸는 마법 주문은 현재의 자신이 최초의 자신을 만나서 하는 ‘이제 됐어’라는 따뜻한 말이었다. 나는 수도를 한다는 것이 상제님 천지공사에 미약하나마 쓰임이 된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힘이 들 때면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자괴감에 자주 휩쓸렸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내 그릇은 이 정도인데…’하는 생각이 들며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원을 맺은 것도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였고, 원한을 푸는 것도 한 사람의 옆에 있어 주려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내가 살려야 하는 인연은 실감 나지 않는 천하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실체를 가진 한 사람부터이다. 슈퍼 영웅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치고 아픈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에서부터 우리 일이 시작됨을. 미약한 것 같지만 한 걸음부터 내디뎌야 하는 것임을 이제 좀 알 것 같다. 반지음은 과거를 풀었지만, 그 대가로 과거의 기억과 인연의 기억을 잊는다. 과거를 잊은 반지음은 낯선 문서하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문서하는 그런 반지음에게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고 말한다. 드라마 속 이 말은 결국은 내게 하는 말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에서부터 내가 출발하는 것이라면 그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길이 있는 도에서, 이번 생을 맞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에 감사함을 품고 손엔 살릴 생자를 쥐고 앞을 본다.
그러므로 너희는 시장판에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예시 43절)
이 구절을 읽으며 희망을 품었고 마음을 다졌던, 처음의 초심을 되새기며 ‘이번 생은 남을 살리는 생으로 잘 부탁해!’하고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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