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이 관일하리니
교무부 손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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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 2월 9일에 김 자현을 데리고 김제 내주평(金堤內主坪) 정 남기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곳에서 상제 가라사대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보리라.” 상제께서 등불을 밝히고 새벽까지 여러 집을 다니시고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 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니라. 이곳에서 글을 쓰고 그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잇고 집의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펼치시니 그 종이 길이와 대문까지의 거리가 꼭 맞는도다. 이 공사를 보시고 상제께서 그 동리에서 사는 김 문거(金文巨)에게 가셨다가 다시 만경 삼거리(萬頃三巨里) 주막집에 쉬고 계시는 데 한 중이 앞을 지나가는지라. 상제께서 그 중을 불러 돈 세 푼을 주시는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자현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리니 내가 잊을지라도 네가 꼭 살펴보도록 하라” 하시더니 오후에 그렇게 되었도다. 그리고 다음날에 형렬이 전주로 동행하니라. 이에 앞서 상제께서 “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 이르셨도다. (행록 5장 6절)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면 햇무리나 번개와 우레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여러 형태의 구름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또한 상제님께서 한곳에서 머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실 때면 언제든지 햇무리나 달무리가 나타났었다. 종도들은 햇무리나 달무리를 보게 되면 상제님께서 출타하실 것을 미리 알고 신발과 행장을 준비하여 명을 기다렸다고 한다.01 윗글에서도 공사를 행하신 후 일반적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백홍이 관일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백홍이 관일한다’는 것은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는 모습’이며 일반적으로 ‘백홍관일’이라고 한다. 이 공사를 행하신 후에 ‘백홍관일’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글에서는 ‘백홍관일’ 현상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알아보고 상제님의 공사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백홍관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어떤 기상 조건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사진 1>은 ‘백홍관일’의 다양한 모습 중의 하나이다.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이 태양인데, 그 주변으로 동그랗게 햇무리가 있고 활처럼 휘어진 흰 무지개[백홍(白虹)]가 태양을 관통[관일(貫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햇빛이 대기 중에 떠다니는 얼음 입자들에 닿아 반사되거나 굴절되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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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백홍관일, 출처: 인터내셔날 클라우드 아틀라스(International Cloud Atlas / Halo Phenomena)
이러한 대기 중의 광학 현상을 ‘무리[헤일로(halo)]’02라고 한다. 태양에 고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햇무리[광륜(光輪)], 초승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환일(幻日, parhelia)이라고 한다. 그 밖에 기둥이나 밝은 점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태양을 관통하는 흰 무지개(백홍)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리’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먼저 지상 6~13km 높이에 태양 빛이 통과할 수 있는 엷은 구름층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 구름 속에 형성된 얼음 결정들이 매우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얼음 결정을 통과하는 햇빛의 굴절각이 지상과 22°를 이루면 ‘백홍관일’과 같은 ‘무리’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렇듯 ‘백홍관일’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조건들이 맞아야 하므로 일기예보처럼 예측이 가능한 현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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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백홍관일’이 나타난 것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백홍관일’에 관한 전통적인 해석은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 ~ 기원전 86)이 쓴 『사기(史記)』의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齊)나라 사람 추양(鄒陽)이 양(梁)나라 효(孝)왕의 문객으로 있을 때 효왕에게 의심받아 옥살이하게 되었다. 옥에 갇힌 그는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써서 효왕에게 보내었는데 그 편지의 앞부분에 ‘백홍관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03
옛날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의 의로움을 사모했는데 흰 무지개(백홍)가 해를 뚫는(관일) 현상이 나타났으므로 태자 단은 형가를 의심하였습니다. 04
이 편지에서 형가(荊軻, 기원전 ? ~ 기원전 227)는 진시황제(秦始皇, 기원전 259 ~ 기원전 210)를 시해하려 했던 자객이다. 추양이 편지에서 말한 일화는 진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연(燕)나라 태자 단(丹)이 진나라에서 탈출한 후 진시황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계획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다. 단은 형가에게 진시황의 시해를 부탁하였는데 시해 사건이 있기 며칠 전 하늘에 흰 무지개(형가의 칼)가 해(진시황)를 꿰뚫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태자 단은 자신이 계획한 일의 성공보다 이 일이 탄로날 것에 대한 걱정을 더 크게 하여 형가를 신임하지 못하고 의심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흰 무지개(백홍)가 해를 관통(관일)하는 모습’을 두고 옛사람들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하나는 흰 무지개를 형가의 칼로 보고 그의 의로움을 추앙하며 폭군이었던 진시황을 응징하려 했던 그의 행동을 두고 ‘하늘이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본 것이다. ‘백홍관일’에 대한 다른 해석은 나라나 임금을 상징하는 해를 흰 무지개가 관통하는 것으로 여기고 ‘병란이나 임금의 신상에 위해가 일어날 조짐’으로 보는 부정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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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옛 기록에도 ‘백홍관일’이 나타났었다고 하며 그 현상에 관한 내용들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성왕 27년(549) 정월에 ‘백홍이 관일하였다’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성왕은 ‘백홍관일’이 나타났음에도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중국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었다가 곤란한 일을 겪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정월에 백홍관일이 나타났음에도 성왕은 그해 10월에 조공을 위해 사신을 양나라에 보냈는데 당시 양나라는 후경(侯景, 503~552)의 난(548년)으로 후경에게 도읍이 점령된 상태였다. 이 사건을 알 리 없던 사신들은 반란군인 후경에게 붙잡혀 억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05 이 기록에서 ‘백홍관일’이 나타난 이후, 사신들이 억류당하게 된 것을 두고 ‘백홍관일’을 ‘불길한 징조’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광해군에게 올린 상소문에 ‘백홍관일’에 대한 해석이 잘 나타나 있다.
태양은 모든 양(陽)의 종주(宗主)로서 임금의 표상이기 때문에, 일식(日食)이 하늘 운행의 상도(常度)인데도 『춘추(春秋)』에 일식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기록하였고, 전(傳)에는 “첩부(妾婦)가 그 지아비를 누르거나 신하가 임금을 저버리거나 정권(政權)이 신하에게 있거나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형상이니, 모두가 음(陰)이 왕성하고 양(陽)이 미약한 증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참혹함은 일식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06
윗글에서 윤선도는 태양을 임금의 표상으로 여기며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것’을 ‘참혹함’이라고 표현하였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을 보고 지아비를 누르거나 신하가 임금을 저버리거나 외적에게 침범당하는 불길한 징조로 여겼는데 이보다 더 참혹한 것이 ‘백홍관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백홍관일’은 역모나 변란 또는 임금의 신상에 위험이 일어나는 불길한 징조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상징사전』에는 ‘백홍관일’에 대하여 “무지개는 아름다우나, 태양과 흰 무지개의 만남은 비정상적인 것, 위험을 상징한다.”07라고 풀이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행록 5장 6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신 후에 ‘백홍이 관일’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이 공사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백홍관일’의 의미를 추정해 볼 수 있다. 1909(기유)년 2월 9일 상제님께서는 정남기의 집에 가셨을 때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보리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임상옥의 집에서는 글과 종이로 공사를 보신 후 만경 삼거리 주막으로 가셔서는 지나가는 중에게 돈 세 푼을 주셨으며 김자현에게는 “오늘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리니”라고 말씀하시며 잊지 말고 꼭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김형렬과 함께 전주로 떠나시기 전에 “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 공사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상제님의 말씀 속에 ‘화천’을 암시하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 공사를 시작하실 때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라고 하신 말씀이나 공사의 마지막에 “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화천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공사의 중간에 나오는 ‘백홍관일’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jpg) 『전경』에는 상제님의 일화가 많은데 백홍관일이 암시한 ‘화천’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만한 구절들이 있다. 그중에는 상제님께서 차경석의 집에서 종도들에게 상악천권(上握天權)하고 하습지기(下襲地氣)로 사배시키신 후 “내가 산 제사를 받았으니”라는 말씀을 남기신 일화가 있고,08 1909(기유)년 6월에는 상제님께서 류찬명에게 남원 양 진사의 장례식에 사용했던 ‘만장’을 외워 주신 일이 있었다.09 같은 달에는 7일 동안 곡기를 끊으셨던 상제님께서 김형렬이 지은 보리밥을 한나절이 지나서 찾으셨는데 그 밥이 쉰 것을 보시고 “절록(絶祿: 녹이 끊어진다)”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다.10 이러한 내용들은 상제님의 화천을 암시하는 일화로 보인다. 상제님께서는 화천하시기 전 종도들에게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라는 말씀을 남기기도 하셨다.11 그리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쉬우니라. 몸에 있는 정기만 흩으면 죽고 다시 합하면 사나니라.”12 하시며 삶과 죽음을 초월하신 듯한 말씀을 하셨다. 화천하시기 전날에는 “내가 천하사(天下事)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 하노라.”13라고 하셨는데 이는 광구천하를 위해 해탈초신으로 ‘구천상제님의 제위’에 임어하실 것임을 암시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을 초월하신 상제님께서는 일반적 의미의 죽음을 빌어서 천지 도수에 따라 화천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는 현상’은 여러 가지 조건이 우연히 맞았을 때 아주 드물게 나타나므로 예측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의로운 형가의 일화를 통해 ‘하늘이 정성에 감동하여 나타난 징조’로 보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임금을 상징하는 태양을 흰 무지개가 관통하는 것으로 보고 나라나 임금의 일신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징조로 해석하였다. 행록 5장 6절에 나오는 공사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공사 이후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홍이 관일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여기서 ‘백홍관일’의 의미는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상제님의 화천’과 연관 지어 해석해 보았다. 그리고 상제님의 화천은 천하사를 도모하기 위해 천지공사의 도수로 정하신 일이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01 권지 2장 4절 참조. 02 대기 중에 있는 얼음 입자들이 태양의 빛을 반사 또는 굴절하여 생기는 광륜(光輪: 원 모양의 후광), 호(弧), 기둥(柱), 점(點) 등의 광학적 현상을 무리[후광 현상(halo phenomena)]라고 말한다. 해를 둘러싸고 있는 광륜을 햇무리(solar halo), 달을 둘러싸고 있는 광륜을 달무리(lunar halo)라고 하며, 그밖에 환일(幻日), 환월(幻月), 광주(光柱) 등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기상청, 『지상관측지침』, p.102.) 03 사마천, 『사기 열전』, 김원중 옮김 (서울: 민음사, 2007), p.572-579 참조. 04 『사기 열전』, 「노중련ㆍ추양열전」, “昔者荊軻慕燕丹之義, 白虹貫日, 太子畏之.” 05 『삼국사기』 26권, 「백제본기」 4, 성왕 27년 1월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다’, 성왕 27년 10월 ‘양에 보낸 사신이 억류되다’. 06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정초본」, 광해 8년(1616년) 12월 21일 정사 2번째 기사. 07 한국문화상징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문화상징사전』 (서울: 두산동아, 1996), p.278. 08 교운 1장 37절 참조. 09 권지 2장 27절 참조, 남원 양 진사의 만장은 조선 말 영의정 김병학(金炳學, 1821~1879)이 죽은 스승 양석룡(楊錫龍, 1800~1879)을 위해 썼던 글이다. 김주우, 「상생의 길: 남원 양진사에 대한 인물 고찰」, 《대순회보》 124호(2011), 참조. 10 행록 5장 27절 참조. 11 행록 5장 25절 참조. 12 행록 5장 32절. 13 행록 5장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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