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문예 : 산문 가작
꼬인 삶, 실타래를 풀어가듯
금릉1-6 방면 선무 전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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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운동을 했으나 허리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업도 해보고 마트 보안팀에서도 일해보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해왔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면서 체력에 한계가 느껴졌고 오래 서 있거나 힘쓰는 일을 더는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손재주가 있어 손으로 만드는 공방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앉아서 손만 움직이는 일이라 덜 힘들겠거니 생각했는데 재료 구매, 수강생 관리 등 신경 쓸 일이 많아 스트레스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맛있는 걸 먹으면 좀 풀리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씩 먹다 보니 체중이 늘어갔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난 계절에 입었던 옷을 못 입는 상황이 생겼지만 금방 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생활도 수도도 정체된 상태로 하루하루가 변화 없이 그렇고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체중에 오랜만에 만난 선각은 못 알아보겠다며 걱정 어린 표정이었습니다. 겁액이 드러나서 그런 것 같으니 수도에 집중해서 풀어보자고 해주셨지만, 그때까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체중이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곧 자릿수를 달리할 것 같은 위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아팠던 허리가 더 아팠고 무릎이며 발목까지 통증이 생겨 움직이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어졌습니다. 무엇을 할 수나 있을지 의지조차 약해져 갔습니다. 운동을 할 수 있으면 체중 감량이라도 하겠지만 움직이면 더 아프니 운동은 꿈도 꾸지 못했고 몸은 더 망가져만 갔습니다. 선각들은 건강이 우선이니 치료를 권했습니다만, 병원에 다닐 때만 통증이 덜 할 뿐이었고 늘 도로 제자리였습니다. 살이라도 빼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이어트에 좋은 약이니 뭐니 사서 먹어 봤지만, 돈만 쓰고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래저래 움직이지 못하니 공방도 운영이 힘들어 빚을 떠안고 처분해야 했습니다. 더는 떨어질 곳도 없어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몸이 아프다는 것에 집착하면서 힘이 안 드는 일만 찾았고, 몸을 쓰지 않으니 체중은 불어났고, 더 움직이지 않으니 체력까지 떨어졌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몸으로 겪어야 하는 겁액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겪어서 풀어내지 않으면 더 힘든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입도하고 오랜 시간 동안 들었던 교화가 머리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인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힘들어도 겪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몸이 안 따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먹고살아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몸이 편한 일을 찾았겠지만 당장 가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알아보았습니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일이 눈에 띄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면접 보고 바로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출근을 하니 시장은 저의 몸 상태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겁게 늘어져 앉아있을 틈이 없었습니다. 상품 진열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고, 이 손님 응대하다 보면 저 손님이 뭘 달라고 하고, 밥 먹으러 갈 시간조차 없어서 가게 한쪽에 앉아 배달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정도였습니다. 호객하고 흥정하고 상품을 차에 실어주고 나면 사우나를 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서 겨우 땀을 식히고 이온 음료로 수분을 보충하며 몸이 힘들긴 했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추슬러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더는 못 움직이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현금으로 일당을 받았습니다. 집에 와서 씻고 누웠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다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내일도 와 달라는 사장님의 부탁에 그러겠다고 답을 한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약속은 약속인지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습니다. 그렇게 또 어제와 같은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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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못 버텨서 연속해서 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현장에서 바로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너무 힘든 날은 하루씩 쉬면서 계속 일했습니다. 주말엔 손님이 많아서 더 힘들었지만 일당을 더 주니 괜찮았습니다. 하루에 물을 몇 통씩이나 마시는데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마시는 족족 땀으로 빠지니 소변조차 만들어질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시장에서 일했습니다. 통증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예전보다는 체력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면서 체중도 함께 흘러나가 몸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생각도 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영원히 불타오를 것 같이 뜨거웠던 여름 기온이 언제쯤 가라앉을까 했는데 이제 아침저녁으로 날이 선선해졌습니다. 바뀔 것 같지 않던 제 삶도 이제 좀 달라지겠지요. 제 개인적인 문제와 수도하는 부분에 관해 선각과 자주 대화하면서 차례차례 풀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할 일이 많긴 하지만 예전처럼 의지가 없는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팔찌를 만들다가 실이 꼬이면 꼬인 부분을 찾아서 살살 풀면 됩니다. 삶도 실타래 푸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타래의 꼬인 부분을 찾아 살살 풀어가듯 삶이 어디서 꼬였는지 차분히 돌아보면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꼬인 부분이 풀리지 않으면 가위로 자르고 이으면 됩니다. 매듭이 있지만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으니 작품에는 흠이 되지 않습니다. 삶에 꼬인 부분도 자르고 이으면 되지 않을까요. 상처는 남겠지만 나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중간에 매듭이 튼튼하게 잡아주니 쉽게 끊어지지 않게 되겠지요. 이제 저의 삶도 수도도 매듭이 생긴 것 같습니다. 더 튼튼하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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