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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답 : 해원의 바른 의미
해원의 바른 의미
 
 

교무부 연구실

 
 
 
  어느 한 포덕소. 낮 기도를 모신 후 박 선사는 자신의 후각인 김 외수의 일로 교감과 상의하고 있습니다.
  “교감요, 김 외수 때문에 할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요, 자 앉으세요.”
  교감과 선사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 외수에게 무슨 일 있나요?”
  “별건 아니고요. 김 외수가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 교감께서 한 번 살펴주셨으면 해서요.”
  “그래요. 그러고 보니 김 외수가 한동안 열심히 도를 알아보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좀 뜸한 것 같네요?”
  “외수 나름대로 도를 열심히 알아보겠다고 결심하더니, 갑자기 심마가 발동했는지 심란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수도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닌가요? 선사가 조금만 이끌어주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텐데요?”
  “그러고는 있는데요. 교감께서 조금 도와주시면 김 외수도 힘을 낼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음. 그런 거라면 시간 내서 김 외수를 같이 보도록 하죠.” 
  “네, 감사합니다. 교감요. 그럼 김 외수와 시간 맞춰서 찾아뵙겠습니다.”
  포덕소 안으로 회사에서 퇴근한 김 외수가 마음이 무거운지 어깨를 늘어뜨리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평소 밝게 웃던 모습과는 달리 김 외수 얼굴은 다소 경직되어 있습니다. 박 선사는 김 외수를 맞이하여 오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후에 교감을 찾아 왔습니다.
  “교감요. 박 선사입니다. 김 외수하고 같이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자 편히 앉아요.”
  ……
  “박 선사 말로는 요즘 김 외수가 힘들어한다고 하던데, 회사 다니면서 수도하는 게 쉽진 않죠?”
  “….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은데 요즘 마음이 조금 힘든 거 같습니다.”
  “김 외수 마음이 어떤데요?”
  “도를 알아볼까 하고 결심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 느낌입니다.”
  “마음이 바빠졌다? 번뇌가 많아졌다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도를 열심히 알아보겠다고 결심하자마자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원래 내 마음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 무엇이 그토록 하고 싶어졌나요?”
  “음…. 갑자기 여행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친구를 만나서 술도 마시고 싶고, 맛있는 요리도 먹고 싶고… 도를 만나고 나서 이런 것에 관한 관심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져서 바빴겠네요.”
  “선사가 허락해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스스로도 지금 이 마음이 내 마음인가 싶기도 해서…, 마음만 심란하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그러네요. 휴! 사실 한 두 개 혼자 해 보았지만 생각처럼 즐겁진 않았어요.”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선사는 하고 싶은 게 많아진 것은 척에 의하여 사심이 발동한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양심의 발현으로 그렇다고 했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으니 더 힘든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 선사가 정확히 얘기해 준 것 같아요. 물론 누군가 마음을 먹을 때 그 마음을 신명이 시험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김 외수의 경우는 박 선사의 말처럼 척이 발동한 것으로 보여요. 이런 경험을 김 외수가 처음 하는 것이라 잘 이해가 안 될 거라 생각해요.”
  “교감요. 그런데 어떤 마음이 양심이고 어떤 마음이 사심인 줄 어떻게 알죠? 제가 보기에는 다 제 마음인 것 같은데요.”
  “물론 마음에 양심과 사심이 있어도 여기까지는 양심이고, 여기까지는 사심이라고 정확히 나누기는 힘들죠.”
  “마음을 안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군요.”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마음을 안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양심인지, 사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건가요?”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내게 들어오는 생각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음. 김 외수가 잘 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에 오히려 마음이 분란해진 건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순간의 감정 같고, 심란한 것이 제 본래의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되더라고요.”
  “상제님께서 마음은 신이 드나드는 기관이며, 문호이며, 도로라고 하셨어요. 즉 우리의 마음에 많은 신이 드나들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그 신은 좋은 신과 나쁜 신이 있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신도 있지만 나에게 해로움을 주는 신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이 드나들고 있다는 건가요?”
    “그건 내 자신이 열어 놓은 마음에 따라 신이 드나드는 것 아닐까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예를 들어 좋은 마음을 열어 놓으면 좋은 신이 올 것이고, 나쁜 마음을 열어 놓으면 나쁜 신이 오는 것과 같죠.”
  “하지만 저는 좋은 마음을 먹었는데… 오히려 척이 발동해서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교감께서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그건 좋은 마음을 먹었는데 척이 온 거 아닌가요?”
  “좋은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도 일시적으로는 나쁜 신이 들어올 수 있죠. 이미 들어와 있어서 발동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면 그건 저의 의지와 상관없다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자 의지이죠. 자신의 척신이 발동해서 나의 마음을 분란하고 어지럽힐 때,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면 결국은 그 척신도 풀리게 되죠.”
  “어떻게 그 척이 풀리는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도전님께서 “해원(解冤)은 척(慼)을 푸는 일이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풂으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니, 양편이 척이 풀려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척은 내가 마음을 풀고 수도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풀리게 되어 있어요.”
  “지금은 해원시대이니 척이 원하는 것을 풀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만약 무엇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면 결국 원이 생기는 것처럼요.”
  “음. 그럼 김 외수가 생각하는 해원은 무엇이죠.”
  “제가 『전경』을 읽다가 지금은 ‘해원시대’이며, 상제님께서는 선천에 쌓인 원을 풀어주시려고 천지공사를 보셨다는 내용을 보았어요. 그러니 해원은 자신이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원을 누구나 이루어서 원을 풀도록 하신 것 아닌가요?”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어요. 극단적이지만 질문을 해 볼게요. 그럼 김 외수의 척이 원하는 것은 김 외수의 성공일까요, 아니면 실패일까요?”
  “… 제 실패겠죠.”
  “그러면 김 외수가 실패해야 척의 원이 풀리니 그 신을 해원하기 위해서 김 외수는 계속 실패해야 될까요?”
  “그건 좀 곤란하겠네요. ㅋ.”
  “제가 보기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원의 방향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김 외수, 교법 3장 15절을 한 번 읽어 볼래요.”
  “또 하루는 경석에게 가라사대 “갑오년 겨울에 너의 집에서 三인이 동맹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니 그렇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그 일을 어느 모해자가 밀고함으로써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고 하시니 경석이 낙루하며 “그렇소이다”고 대답하니라. 또 가라사대 “너의 형제가 음해자에게 복수코자 함은 사람의 정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너의 부친은 이것을 크게 근심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나니 만일 너희들이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천에 또다시 악의 씨를 뿌리게 되니 나를 좇으려거든 잘 생각하여라” 하시니라. 경석이 세 아우와 함께 옆방에 모여 서로 원심을 풀기로 정하고 상제께 고하니 상제께서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떠다 놓은 후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 경석의 네 형제가 명을 좇아 행하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방성대곡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너의 부친은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을 괴로워하니 그만 울음을 그치라” 이르시니라. 그 후에 “천고춘추 아방궁 만방일월 동작대(千古春秋阿房宮 萬方日月銅雀臺)”란 글을 써서 벽에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에 두게 하셨도다.”
  “저는 상제님께서는 차경석에게 원을 푸는 올바른 방향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차경석의 경우는 자신이 원을 품은 경우이고, 저처럼 외부에서 척신이 원을 품고 있는 경우는 다르지 않나요?”
  “앞에서 잠깐 얘기했지만 척을 푸는 원리는 같아요. 내가 품은 척이나 외부에서 발동하는 척이나 결국은 내가 먼저 풀어야 풀린다는 것이지요. 남이 꼬아 놓은 실타래건 내가 꼬아 놓은 실타래건 자신이 그 실타래를 풀면 풀리는 것처럼요.”
  “자신이 풀어야 척이 풀린다는 것이네요.”
  “차경석의 부친을 어느 사람이 밀고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차경석은 자식으로는 당연하게 부모의 원수를 찾아가 원수를 갚고자 하고 있어요. 상제님께서도 사람의 정으로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보셨어요. 그러면 차경석이 원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따르는 것이 해원일까요?”
  “당연히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해원이 아닐까요?”
  “그럼 차경석이 원수를 죽여서 원을 풀었다고 치면, 죽임을 당한 사람이나 그 사람의 자식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또 원이 생겼다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차경석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여 원수가 풀려도 그것은 자신의 원을 풀었을 뿐, 다시 새로운 원을 낳았으니 진정으로 해원이라 할 수 없는 거죠. 그러므로 이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처럼 원의 순환고리를 만들 뿐이에요. 따라서 일시적으로는 원을 푼 해원처럼 보이지만 다시 척을 지어서 원을 발생시키고 있으니 진정한 해원이라 할 수 없죠.”
  “그러면 어떤 것이 진정한 해원인가요?”
  “상제님께서는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당신을 좇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해원시대라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맞아요. 일단 척이 발동하면 감정이 발생하게 되죠. 차경석의 경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 대한 척이 죽이고 싶은 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처럼요. 일단 감정의 발동을 푸는 방향으로 해원이 이루어지면, 일시적으로는 해소된 것처럼 보여도 해원이 되었다고 볼 수 없어요. 또한 감정은 욕망에 의해서도 발동되는데 이것을 사심이라고 해요. 즉 사심은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죠. 이처럼 감정이나 욕망의 해소로 이루어지는 해원은 해소되지 않는 갈증처럼 반복되고 커질 뿐이죠.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해원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욕망의 충족일 뿐이에요.”
  “그럼 해원은 감정을 다스려야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일단 원의 고리가 끊겨야 해원이 되는 거지요. 차경석에게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해원이 된다고 하신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처럼 아예 원의 고리를 끊으라는 것인가요?”
  “맞아요. 척이 발동하는 경우, 감정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감정을 다스려서 수도로 풀어나가야 하겠지요.”
  “수도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마음 중 사심은 인심으로 언제나 욕망에 빠질 가능성이 커요, 따라서 욕망을 충족하기 시작하면 수도와 거리가 멀어지기 쉽죠. 그러므로 자신의 양심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 시작은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에서 시작된다고 봐요.”
  “그러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앞으로는 해원시대라는 의미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상제님께서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므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낸다고 하시면서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하셨어요. 이것은 일견 자유롭게 하는 것이 해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뒤에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는 당부가 더욱 중요한 의미라고 봐요. 즉 앞으로 해원시대라는 말은 마음대로 해서 마음껏 풀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도를 내놓으셨으니, 수도로 마음을 잘 다스려서 진정한 해원을 이루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면 제가 도를 결심하고 흔들린 것은 척이 제가 해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고, 그 척을 이기기 위해 마음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 수도라는 말씀인가요.”
  “잘 봤어요. 수도는 마음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양심에 맞추어 생각해 보고, 자신의 사심을 이루기보다는, 겁액이 일어날 때 마음을 다스려서 그 겁액을 극복해야 원의 고리를 끊는 진정한 해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수도로 극복해 갈 수 있도록 선사와 잘 상의해서 나간다면 겁액을 하나하나 극복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 감사합니다. 아직 해원의 의미를 다 알기는 어렵지만, 수도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마음으로 잘 다스려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마음을 잘 추스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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