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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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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지나친 자기애(나르시시즘)에 대한 경계

지나친 자기애(나르시시즘)에 대한 경계



연구원 조광희




  삶을 영위해 나갈 때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自己愛)’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모든 일의 동기부여로 작용하며 특히 긍정적인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기애’가 지나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타인보다 자신이 더욱 우월하다고 믿으며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칫 자만심이 싹트기 쉬워 심하면 평정심을 잃고 탈선의 길을 갈 수 있다. 이는 수도과정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문제다. 도전님께서는 이를 경계하여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리고 수도의 완성을 기하여야 한다.”01라고 말씀하셨다. 자부자찬은 ‘과도한 자기애’를 나타내는 자아도취적 심리상태로서 일종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란 그리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이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후 수선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청년인 나르키소스는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나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남을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기이하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빠져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이 신화에서 힌트를 얻어 지나친 자기애, 자아도취, 거만함, 허영심과 자기과시 등의 성격을 나르시시즘으로 지칭하였다.02 프로이트는 이를 일차적 자기애와 이차적 자기애로 나누어 설명했다. 일차적 자기애는 유아기에 나타나는 자기 중심성으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기본적 욕구다. 문제는 이차적 자기애에서 나타난다. 유아기에 자신을 향하던 관점이 타인에게 전이되는 과정에서 ‘이상화 혹은 과장된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03 이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하고 허영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셀피(Selfie)’ 현상에서 나타난 ‘자기과시(self-display)’적 행태는 이를 잘 대변해 주는 사례다. 셀피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여 사회관계망 사이트(SNS: Social Network Site)에 공개하는 행위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처음에는 지인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좋아요’와 ‘구독자’ 숫자가 반영되면서 차츰 과도한 ‘관심 끌기’ 경쟁으로 변해갔다. 처음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어느새인가 슈퍼카와 명품으로 도배한 사진, 자신의 몸매나 미모 뽐내기 등 과도한 자기 자랑과 과시가 흘러넘치게 되었다. 아마도 이는 ‘타인보다 월등하다’라고 믿는 자기과시의 욕구가 필연적으로 누군가로부터 그렇다고 인정받기를 희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르시시즘이 단순히 개인의 정신적 차원에서 그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의 허영심과 자아도취적 사고는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이러한 욕망에 도취한 인간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악영향을 끼치며 급기야 온 사회에 파멸을 불러오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사례로 2차 세계대전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히틀러의 나르시시즘 즉 자아도취는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정치가로 유능하며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이라고 믿었다. 또한 자신이 법적 문제에서도 탁월한 판사라고 믿었고 독일에서 제일 가는 건축가로 믿는 등 각 분야에서 권위자임을 자처했다. 특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과 타협이란 없었는데, 자신을 이끄는 생각은 오직 하나 ‘독일 제국의 부활’이었고 이 생각은 그 밖의 모든 것보다 항상 우선했다.04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이 잠시 들었다가도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몰아넣고 인종청소를 감행한 ‘아우슈비츠 대학살’은 히틀러의 극단적 나르시시즘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무엇이 그를 희대의 광인으로 만든 것일까? 그 원인에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억압받았던 유년 시절과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열등감이 한몫했다. 시대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유럽에 활발히 일어났던 민족주의가 히틀러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게르만 신화를 작품화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노래’와 같은 오페라 작품은 무너져 있던 히틀러의 자존감에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05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재현한 영웅의 모습으로서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간 것이다.
  한편,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점은 나르시시즘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전체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민족주의, 선민사상, 인종차별 등이 집단나르시시즘의 대표적인 양상인데, 히틀러를 추종한 독일국민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정치적·경제적 혼란기를 겪던 터였다. 패전국으로서 감내해야 할 치욕과 패배감은 도화선이 되었고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과 신화 재현의 당위성을 주장하던 히틀러의 연설은 독일 민족의 나르시시즘에 불을 붙였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인류는 큰 희생을 치렀다. 히틀러는 악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독일은 지금도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극히 나만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은 히틀러의 경우처럼 욕망에 집착하다 자기 자신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과 사회에도 큰 피해를 주어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의 수도는 나 하나 도통 받아서 잘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화평한 세상에 인도하는 지상천국건설에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수도 생활에서 나르시시즘을 경계하고 극복할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나르시시즘의 일차적 문제점은 자신을 비정상적으로 이상화하여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현상으로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목을 받거나 인정을 받아야 해소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허욕 혹은 허영심에 들떠 자신도 모르게 사심이 발동하게 된다. 그 이유는 스스로 우월감을 증명하거나 과시하기 위해서 외면의 물욕에 집착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내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내면의 성찰은 나르시시즘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는 첫 번째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심과 양심 두 가지가 있는데 양심을 찾는 것이 바로 무자기이다.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으로서 편벽된 자기애가 없는 무욕청정하고 순선(純善)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무자기의 실천이란 이를 밝혀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무자기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행위는 나르시시즘의 가면을 걷어내는 첫걸음인 것이다.
  나르시시즘의 이차적 문제점은 히틀러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과 그 외의 모든 것을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공감대나 유대감이 결여되어서 나타난 심리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나르시시즘을 개선하는 데 타인과의 공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감이란 타인의 생각에 내가 반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다.06 만일 공감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무자기가 시작이라면 그다음 단계는 나에게 몰입된 관점을 외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넓혀주는 데 있다. 이때 보은상생의 이해와 실천은 두 번째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다. 도전님께서는 “사람은 부모의 혈육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자애와 형제 친척의 도움을 받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 국가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비로소 사람 된 도리를 다하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誼)어린 사회를 떠나서는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07라고 말씀하셨다.
  나라는 존립과 생의 원천은 가깝게는 부모, 나아가서는 이 사회와 세상 모든 만물로부터 도움을 받아 유지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은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나’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타인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자연스럽게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아는 지은필보(知恩必報)의 자세로 자신의 욕망이 아닌 보은상생의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애가 지나쳐 나타나는 일종의 자아도취다. 나는 물론 타인도 속이게 만드는 병적 상태로서 종국에는 이 사회에도 크나큰 악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보다 낫다 하는 생각이 들어가면 그것이 허령이 된다.”08라는 도전님 말씀을 경계로 삼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허세와 허욕을 버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상생 대도의 실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인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01 『대순지침』, p.54.
02 이병량, 「관료의 나르시시즘 연구」, 『정부학 연구』 20 (2014), p.10 참고.
03 이만홍, 「정신분석적 자기심리학에서의 나르시시즘 이해」, 『정신병리학』 4 (1995), pp.18-20.
04 고명섭, 『광기와 천재』 (서울: 인물과사상사, 2007), p.43. 참고.
05 안인회,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pp.303-309.
06 이만홍, 앞의 글, p.20.
07 《대순회보》 2호, 「도전님 훈시」.
08 「도전님 훈시」(198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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