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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2년(2012)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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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야기 : (90) 해금강(海金剛) 둘러보기

(90) 해금강(海金剛) 둘러보기

 

글 교무부

 

 

 

 

  해금강은 금강산 줄기가 온정령(溫井嶺) 근처에서 갈라져 동쪽으로 뻗어 나가며 신계사 뒷산과 고성의 전성산(全城山)을 만들고 화현(花峴)에서 바다에 막히자 물밑으로 밀고 들어가다 동해의 파도더미에 떠밀려 솟구쳐낸 끝자락이다. 비로봉에서 내려간 금강산의 온갖 정기가 한데 모여 강맹한 지세로 천 길 바닷물 밑을 뚫고 백색 화강암봉들을 분사하듯 해면 위로 융기시킨 것이다. 이런 백색 화강암봉들이 수천만 년 일렁이며 덮쳐드는 파도더미에 시달리고 비바람에 씻기다 보니 연약한 부분은 모두 닳아 없어져 단단한 부분만 남게 되었다. 그 결과 남은 바위봉우리들은 천태만상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어 금강산의 본모습보다 더욱 신기하게 되었다.

 

 

 

 

  잔잔한 호수와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 서 있는 돌기둥과 기암괴석들이 조화를 이룬 해금강은 비록 외금강과 내금강보다 규모는 작지만, 육지와 바다에 걸쳐 있어 서정미 넘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본래 ‘해금강’이란 이름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17세기 말에 해금강의 풍경이 금강산과 같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해금강’이란 이름도 생겨났고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해금강을 보지 않고서는 금강의 미(美)를 알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해금강이란 이름을 지은 이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참봉(參奉)에 제수된 뒤 고성군수로 부임했던 남택하(南宅夏, 1643~1719)이다. 그 내용을 『강원도지』 권2 고성 해금강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금강은 옛날에는 그 이름이 없었다. 무인(戊寅, 1698) 3월에 남택하가 군수로 있으며 산수를 좋아하는 성벽으로 경내 산해 명승을 죄다 찾지 않음이 없었는데 칠성봉의 북쪽 산록에 이르러 이를 얻고 금강산의 얼굴빛과 같다 하여 해금강이라 일컬으니 이곳이 비로소 이름을 날리어 크고 작은 유람객들이 모두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찾게 되었다. 명승지의 숨고 드러남도 역시 때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그 후 금강산의 절경을 말할 때 금강산이 푸른 동해로 뻗은 해금강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해금강은 외금강의 동쪽 해안 일대에 펼쳐진 명승 곧, 고성군의 삼일포와 남강 하류에서 더 남쪽으로 영랑호, 감호, 화진포까지 그리고 북쪽으로 통천군의 금란굴과 총석정 일대까지도 포함하는 남북 약 30km 구간을 말한다. 그러나 좁게는, 삼일포에서 동해 쪽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고성군 해금강리 앞 수원단(水源端)으로부터 시작하여 남강 하구의 대봉섬을 거쳐 화진포에 이르는 약 6km 사이의 바다 명승지를 말하기도 한다. 해금강의 명승지들은 크게 해금강구역, 삼일포구역, 총석정구역의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으니,이들 구역에 속한 대표적인 명승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삼일포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고 격찬한 영동의 여섯 호수 중 하나인 삼일포는 온정리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차에서 내려 소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오르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호수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 거울같이 맑고 잔잔한 삼일포의 절경이 내·외금강의 험로를 탐승하느라 쌓인 노독을 확 풀어주는데, 이곳이 바로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에서도 총석정(叢石停)과 더불어 손꼽히는 삼일포이다.

  삼일포(三日浦)는 신라 시대에 영랑, 술랑, 안상랑, 남석랑이라는 네 신선이 관동팔경을 돌아보면서 한 경치마다 하루씩 머물기로 했는데 이곳에서는 사흘간이나 묵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나라 신선들도 절경에 취해 사흘이나 머물렀다는 삼일포는 둘레 약 8km, 깊이 9~13km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이다. 호수 서쪽은 송림이 우거진 36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호수 가운데에는 와우도(臥牛島)를 비롯한 4개의 바위섬이 있다.

  호수는 고요하면서도 화려하고 투명하여 크고 작은 물고기가 수초 사이를 헤치며 노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호숫가의 작은 언덕에는 큰 바위 다섯 개가 동그랗게 모여 서 있는 곳이 있다. 호숫가에서 쳐다보면 그 바위들이 연꽃처럼 보인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에 단청무늬로 장식된 정자가 있다. 지붕은 붉은 합각지붕인데, 한 마리의 학이 금방 날아오를 듯한 모습을 디자인한 누각이다. 이 누각에 오르면 서쪽으로 외금강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해금강의 절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들렀던 최립(崔笠, 1539~1612)은 삼일포의 전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비 개인 뒤의 서른여섯 봉우리,

소라처럼 아름답고

백조는 쌍쌍이 거울 같은 호수를 희롱하네.

사흘간 노닐던 신선은 간 곳이 없건만

신선이 사는 곳의 아름다움 이제야 알겠네.

 

 

 

  연화대 부근에는 아담한 백사장과 ‘꿈에서 얻은 샘’이라는 몽천암(夢泉岩)이 있어 그 물맛이 그만이다. 몽천암 뒤쪽에는 집채 같은 바위들이 뒹굴고 있는데, 그중 아주 큰 두 개의 바위가 양쪽에 수문장처럼 나란히 서 있고 그 위로는 또 하나의 널찍한 바위가 지붕 구실을 해주며 얹혀 있는 ‘금강문(金剛門)’이 있다. 막혀 있던 바위가 어느 해인가 홍수에 떠밀려 마치 고인돌처럼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연화대와 장군대 사이에 호숫가로 튀어나온 바위산에는 봉래대(蓬萊臺)가 있다. ‘봉래대’에는 시인이며 서예가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호수를 바라보며 글공부를 했다는 봉래굴이 있다.

 

 

 

해금강

  해금강구역의 해금강(海金剛)은 삼일포에서 동해로 약 4km 되는 곳에 있는 고성군 해금강리 수원단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해만물상, 입석, 칠성바위를 거쳐서 남강 하구의 대봉섬에 이르는 남북 6km, 동서 2km 내 좁은 범위의 명승지를 말한다.

  말 그대로 바다의 금강산인 해금강은, 금강산 동쪽 자락의 연맥이 고성평야의 적벽강 밑으로 숨어들었다가 다시 동해 위로 솟아오른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하겠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을 그대로 바닷속에 옮겨놓아 봉우리의 아름다움과 전설의 미(美)를 다 지니고 있거니와 저만이 가지고 있는 창해(滄海)의 아름다움까지 자랑하고 있다. 도암 이재(李縡, 1680~1746)가 쓴 「해금강」이란 시에는 금강산과 해금강의 정취가 잘 드러나 있다.

 

 

 

산속에 머물러도 더 바랄 것 없는데

무엇이 더 그리워 바다를 찾아왔나

내 정녕 알겠노라 일만이천 봉우리들

하나같이 주먹 같은 돌들로 이뤄졌음을

어제 높은 데서 굽어볼 때는

산 모습 굽이치는 물결이려니

이번에 바다 위에 다시 와보니

산 이루고 남은 돌 여기 버린 듯하구나.

 

 

 

  해금강에서는 외금강이나 내금강처럼 험한 산길이나 고개를 넘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작은 배를 타고 이리저리 저어가며 들여다볼 때에는 해금강의 자연미가 더 오묘하다. 특히 수원단의 남쪽 바다에 솟은 만물의 형상을 한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경관을 일러 ‘해만물상(海萬物相)’이라 한다. 기묘한 바위는 외금강과 내금강에도 수없이 많지만 푸른 소나무와 깨끗한 모래사장, 그리고 푸른 물결이 한데 어우러져 해안가에 펼쳐진 풍광은 해금강만이 가진 자랑거리이다.

  해만물상의 갖가지 바위와 절벽은 천태만상의 물형을 연출한다. 둥근 것과 뾰족한 것, 앉아 있는 것과 일어선 것 등등. 해만물상에는 모양과 형태에 따라 쥐바위, 고양이바위, 부부바위, 천왕바위 등으로 불리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촛대처럼 생긴 기암이 바다기슭의 절벽 가까운 곳에 보기 좋게 솟은 촛대바위와, 두 개의 바위기둥이 마주 서서 마치 대문처럼 열린 듯한 해금강문(海金剛門)의 경치가 가장 유명하다.

  해금강의 또 다른 명승은 장쾌한 ‘해돋이’이다. 동틀 무렵 해금강의 백사장에 나서면 끝없이 펼쳐진 동해 위로 해가 이글거리며 서서히 떠올라 하늘과 바다와 해만물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한편, 해만물상은 물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속에도 또 다른 해저만물상이 있다. 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면 맑고 어른거리는 물결 속에 별천지가 있음을 보게 된다. 물 밑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울룩불룩 솟아올라 낮은 언덕,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수많은 기암괴석이 또 다른 형태의 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당나라 기록에 의하면 천하에는 금강이 모두 여덟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금의 금강산 일만 이천 봉과 해금강이요, 나머지 일곱 개는 동해의 깊고 푸른 물속에 잠겨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낼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총석정

  통천군의 통천항에서 2km 떨어진 곳에 해금강 총석정(叢石亭)이 있다. 통천군 총석리에 있는 총석정은 반도동단의 봉우리 기슭에 1km 구간에 걸쳐 돌기둥들이 우뚝우뚝 솟은 곳이다. 총석정의 돌기둥은 모두 비슷한 크기와 높이로 되어 있으며 반듯하고 곧다. 정육각형의 현무암 기둥들이 바다 밑에 뿌리를 박고 무더기로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명승구역이다. 용궁의 수정문처럼 솟아올라, 푸른 물결 위에 자태를 드리운 모습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중에서도 입총(立叢)이 가장 빼어나니 너무도 반듯하고 미끈하게 생긴 네 개의 돌기둥이 바닷물을 디디고 곧추서 줄지어 있다. 이 돌기둥들이 햇빛을 반사하여 눈부신 은빛을 뿌리다가 검은빛으로 변하고 어떤 것은 신비로운 붉은빛을 띠기도 하니,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기관(奇觀)이며 미관(美觀)이라 하겠다.

  검푸른 파도가 밀려 왔다가 총석정 발굽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광경은 언제나 장쾌하다. 총석정은 원래 이곳 절벽 위에 세운 정자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그림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총석정 동남쪽 7km의 연대산 바다 기슭에는 관음보살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금란굴도 유명하다. 또 부근에는 난도(卵島: 일명 알섬), 시중호(侍中湖), 통천3도, 국도(國島) 등이 모두 총석 다발로 이뤄진 아름다운 섬들인데, 특히 푸른 비단 위에 하얀 총석 병풍을 쳐놓은 듯한 국도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전설에 따르면 열랑, 술랑, 안상랑, 남석랑의 사선(四仙)이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총석정에 왔다가 입총의 꼭대기에서 놀고 갔다 하여 이를 사선봉(四仙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5~20m 높이의 사선봉은 네 기둥이 스스로 신선이 된 양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푸른 파도를 굽어보고 서 있다. 태양과 달, 구름과 바다의 조화에 따라 눈부신 금빛 은빛을 뿌리기도 하고 검은빛을 띠기도 한다. 이를 두고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은 옥황상제가 사시는 백옥루 중에 아직 남아 있는 네 기둥이 서 있는 듯하다고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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