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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의 만남 : 동중서의 양존음비(陽尊陰卑)론

동중서의 양존음비(陽尊陰卑)론



연구원 이호열




  유교 이념이 정치·사회적으로 지배하던 시대의 산물인 남존여비의 관습은 역사적으로 여성의 원과 한을 잉태하게 된 배경이 되어 왔다. 이러한 관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서경(書經)』에 “옛 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아야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쓸쓸해진다(망한다).’라고 하였다”01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남녀에 대한 차별의식은 꽤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가지는 듯하다. 이러한 남녀차별에 대한 관념은 관련 이론이 형성되어 뒷받침되면서 고착화 되었는데, 양존음비라는 음양론적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양존음비는 ‘양은 존귀하고 음은 낮다’라는 뜻으로 이는 특히 유가(儒家)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사회 전반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양존음비론은 선천(先天) 시대의 주요한 음양론으로서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자식, 스승과 제자 등 인간관계를 음양 관계로 이해하기 위한 구조적인 틀을 제공하며 대순사상의 정음정양(正陰正陽)과도 대비된다. 이 글에서는 한(漢)나라 초기 동중서의 양존음비론과 그 영향을 알아보고, 대순사상과도 연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양존음비론의 등장 배경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나라(기원전 221~기원전 206)에 이어 다시 한번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기원전 206~기원후 220) 초에는 ‘남아선호 현상’이 두드러졌다. 당시의 남아선호는 매우 극심해 태어난 여자아이를 죽이는 경우까지 있었다.02  이는 전국시대에 많은 나라가 생존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흥망성쇠를 거듭해 오면서 여자보다 남자를 우대하는 남성 우월의 사회적 관념이 짙어졌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또한, 당시는 신하가 왕을 시해하는 일이 빈번하고, 대의와 명분이 실종되어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험난한 시기를 지나오면서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던 때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양존음비의 음양론적 시각이 이론적으로 정착된 것은 한 초 동중서(董仲舒)에 의해서였다. 이는 각각 따로 전개되어 오던 음양설과 오행설이 전국시대 말기 추연(鄒衍, ?~?)에 의해 음양오행설로 결합되어 그 영향력이 커지고, 음양의 범주로 우주 자연과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03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전국시대가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기원전 210)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한나라가 다시 통일을 이루며 새로운 국가정책과 비전을 내세우던 때였다. 한나라 초기 정치적 이념은 도가(道家) 계열의 황로학(黃老學)이 주도하였다. 이는 ‘오랫동안 전란과 가혹한 정치에 지친 백성들을 쉬게 해 주어야 한다’라는 목적을 두고 무위(無爲)의 정치를 통해 될 수 있으면 백성들을 간섭하지 않고자 함이었다.04  하지만 무제(武帝, 기원전 156~기원전 87)는 이러한 정치로는 영토 확장을 향한 자신의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생각해 동중서의 「천인삼책(天人三策)」05 을 받아들이고 유가 사상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또한, 수도 장안(長安)에 태학을 설치하여 유학을 본격적으로 장려하였으며, 오경(五經)박사를 두어 유교 경전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유가의 경전 중 『춘추(春秋)』를 깊이 연구한 동중서는 세상을 양과 음으로 구분하여 체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의명분과 위계를 세웠다. 그리고 왕과 신하, 귀족과 평민, 남성과 여성 사이의 수직적 계층에 따른 양존음비의 윤리 관계를 정립하여 통일제국의 통치 질서 확립이라는 목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양존음비론의 주요 내용과 영향
  양존음비의 관념은 단지 동중서 혼자만의 창작물이 아니었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학자들이 『주역』의 해석서인 『역전(易傳)』06 을 저술하면서 음양과 남녀에 대한 존비의 관념이 정형화되었는데, 양존음비론은 이러한 음양론적 해석에 영향받아 정립되었다.07  양존음비 개념은 『주역』 「계사전」의 ‘천존지비(天尊地卑)’08 라는 표현에서 유래하여 그의 저작인 『춘추번로(春秋繁露)』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춘추번로』 「양존음비」 편에서 그는 양이 시작되면서 만물이 시작되고 양이 왕성하면 만물 또한 왕성하며 양이 쇠퇴할 때 만물 또한 쇠퇴하므로,09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인간사에 있어도 양 중심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순리임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군주·아버지·남편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양에 두고, 신하·자식·아내라는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음에 두어 양존음비의 음양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윤리적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10  이러한 음양 관계에 있어 ‘양’은 주(主)가 되고, ‘음’은 종(從)이 되므로 종이 되는 신하·자식·아내는 주가 되는 군주·아버지·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의」 편에서 그는 “음은 홀로 행하는 바가 없으니 그 시작에 있어 홀로 일어나지 못하고 그 마침에 있어 공을 나누지 못하므로 겸(兼)하는 바의 뜻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하는 군주와 공을 함께하고, 자식은 아버지와 공을 함께하고 아내는 남편과 공을 함께한다.”11 라고 말하면서, 아랫사람인 신하·자식·아내는 홀로 공을 드러내지 못하며 윗사람인 군주·아버지·남편과 함께할 때만 공을 인정받을 수 있는 보조적인 존재로 규정하였다.
  양존음비의 관념은 단지 이론형성에 그치지 않았다. 동중서는 유교를 한나라의 국교 위치로 끌어올리고 사상적 중심에 자리할 수 있게 하였고, 양존음비론을 포함한 그의 사상은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그 후 양존음비의 관념은 남존여비 관념의 토대를 이루며 가부장제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12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정치 및 철학,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뿌리를 내렸다.
  한나라 이후 삼국시대와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 동안 그리고, 다시 중국을 통일한 수당의 통일왕조가 도교와 불교를 숭상하면서 유교의 영향력은 한때 줄어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양존음비의 전통은 송대 성리학에 이르러 정이(程頤, 1032~1107)의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주자(朱子, 1130~1200)의 부양억음(扶陽抑陰: 양을 돕고 음을 억누른다)으로 이어졌다. 이후 서양사상과 문물이 밀려 들어온 청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유교가 중국의 정치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오는 동안 이러한 차별의식은 굳건하게 전승되었다.13 
  동중서 사상의 특징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 인사(人事) 등의 내용을 음양론으로 해석하고 이를 유가 사상과 접목하여 새롭게 제시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의 양존음비론은 상하 계급 간의 도덕적 윤리 관계를 강조하며 유교 사회의 수직적 계층 질서 확립에 기여하였다.14  하지만, 음양 차별적 관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급 간의 주종관계를 심화시키고 봉건 질서를 고착화하며 가부장적 기득권을 보장하는 논리로 작용하였다. 특히 남존여비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한을 잉태하게 한 관념적 토대가 되었으니 이것이 동중서의 양존음비론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라 할 것이다.



대순사상의 정음정양과의 대비


  음양은 ‘교운 2장 「음양경(陰陽經)」’에서 “천지의 일은 모두 이 음양 가운데 이루어지고, 만물의 이치도 모두 이 음양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15라고 언급될 정도로 대순사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이다. 이는 곧 음양을 모든 사물과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필연적 요소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순사상은 양존음비와는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음양을 바라보고 있는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천의 음양 관계는 음양의 가치 차별적 관점에서 이해돼왔고, 그러한 관념으로부터 양의 음에 대한 상극적 지배와 예속의 양상은 심화되어 나타났다. 이를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 하는데, 대순사상에서는 이러한 억음존양을 혼란의 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도전님께서 “상극(相克) 세계의 것은 억음존양의 탓으로 모두가 부정·불응·불평등이 생겨 천지는 혼란 복멸의 위기에 접어들게 되었다.”16 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음양 관계로부터 비롯한 천지의 위기상황을 구제하기 위해 상제님께서는 일찍이 후천 음양 도수를 정음정양(正陰正陽)17 도수로 조정하시고 이와 관련된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정음정양은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바탕으로 ‘양을 바로하고, 음을 바로 한다’ 혹은 ‘양을 양답게 하고 음을 음답게 한다’라는 의미로서,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음양도수의 조정을 통해 양존음비의 차별적 관계가 아닌 음양의 대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정음정양의 시대를 열고자 하신 것이다.
  선천의 음양론적 관념을 바꾸기 위한 역사(役事)는 상제님의 말씀과 공사를 통해 나타난다. 상제님의 “선천에서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아니하였으되 이것은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이 뒤로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들어야 하느니라.”(교법 1장 62절)라는 말씀은 그동안 사람들의 관념 속에 박혀있는 하늘과 땅에 대한 가치, 나아가 음양에 대한 가치 기준이 바뀌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대장부 대장부(大丈夫 大丈婦)”,18  “남장군 여장군(男將軍 女將軍)”,19  등과 관련되어 행하신 공사에서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독립적인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였던 여성의 능력과 위상을 남성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신 상제님의 뜻을 읽을 수 있다.
  동중서의 양존음비론에 따르면, 아랫사람인 신하·자식·아내는 윗사람인 군주·아버지·남편과 공을 함께해야 하므로 여성은 공덕을 세우고도 그것을 홀로 드러내지 못하는 존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여성의 정치적·사회적 참여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 위상은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이는 상제님께서 음보다 양에 치우쳐 억음존양의 현상을 낳았던 음양의 도수를 바로 잡아 정음정양의 공사를 보신 까닭이라 여겨진다. 또한,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예부터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20라는 말씀이 되새겨지며, 이로써 양존음비론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드리워졌던 남녀 간 불평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거두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01  『書經』, 「牧誓」, “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02  송정화, 「중국 여성숭배의 철학, 종교적 수용에 대한 소고」, 『도교문화연구』 (2004), p.184 참고.
03 김제란, 「동양의 가부장제의 이론적 근거로서의 음양사상: 선진에서 한대까지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중국철학』 7 (2000), p.100 참고.
04 김성지, 「동중서의 陽중심사상으로의 전환에 대한 고찰」 (경희대 박사학위 논문, 2010), p.204 참고.
05 한무제의 책문(策問: 임금이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어 답하도록 함)에 따라 동중서가 건의하여 채택된 것으로 이를 통해 하늘과 군주의 관계, 진나라 통치와 제도상의 폐단, 관리들의 무능을 언급하고  현재(賢才)들을 등용할 것을 적극 건의하였다. 전형일, 「동중서의 음양론 연구」 (원광대 박사학위논문, 2014), pp.101-175 참고.
06 “계사전 등에서 음·양을 군자·소인으로 비유해서 설명한 점을 보면 군자와 소인은 계급상 차별 혹은 도덕적 차등의 관계이므로, 주역에는 설괘전에서 말하는 대등한 조화를 이루는 음양관계와 단전, 계사전 등에서 언급되는 차등적 음양관계가 공존하는 셈이 된다.” 임채우, 「주역 음양 관계론의 정합성 문제」, 『동서철학연구』 72 (2014), p.48 참고.
07 양계초 외, 『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 편역 (서울: 신지서원, 1993), p.151 참고.
08  『주역』, 「계사상전」, 제1장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
09 『春秋繁露』, 「陽尊陰卑」, “陽始出, 物亦始出, 陽方盛, 物亦方盛, 陽初衰, 物亦初衰, … 以此見之, 貴陽而賤陰也.” 참고.
10 『春秋繁露』, 「基義」, “凡物必有合, … 妻者夫之合, 子者父之合, 臣者君之合, 物莫無合, 而合各有陰陽, … 君臣父子夫婦之義, 皆取諸陰陽之道.” 참고.
11 『春秋繁露』, 「基義」, “陰道無所獨行. 其始也不得專起, 其終也不得分功, 有所兼之義. 是故, 臣兼功於君, 子兼功於父, 妻兼功於夫.”       
12 김제란, 앞의 글, p.105 참고.
13 김성지, 앞의 글, pp.134-135 참고.
14 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문명과 문명의 대화』 (서울: 휴머니스트, 2011), p.22 참고.
15 교운 2장 42절, 「陰陽經」, “天地之事, 皆是陰陽中有成, 萬物之理, 皆是陰陽中有遂”.
16 《대순회보》 2호, 「도전님 훈시」, “상극(相克) 세계의 것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탓으로 모두가 부정ㆍ불응ㆍ불평등이 생겨 천지는 혼란복멸의 위기에 접어들게 되고, 무상도(無常道) 재겁ㆍ전쟁ㆍ병겁 뿐인데 반하여, 상생(相生)의 세계에서는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평등ㆍ조화ㆍ화합ㆍ협동으로 재겁이 사라지고 전쟁과 병겁이 없는 영원한 지상의 화평이 있을 뿐입니다.”
17 공사 2장 16절.
18 교법 2장 57절.
19 권지 1장 17절.
20 교법 1장 6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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