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사평
‘닫힌 창이라도’는 제목을 보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닫은’이 아니라 ‘닫힌’이다. 누가 ‘닫았을까?’ 화자인가, 아니면 조물주인가. 궁금해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생긴다. 천천히 읽어나가면 ‘창을 닫은’ 존재가 얼굴을 숨기고 있다. 화자 시선 위치가 사물의 뒤에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뒤로 숨었을까? 아마 부끄러움이 아닌가 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겸손이다. 다시 이름을 붙인 사물을 중심으로 읽어보면 화자는 사물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관찰하고 있다. 이를 시학(詩學)에서는 ‘이물관물(以物觀物)’이라 한다. 아마 제유의 미학 정도로 보면 된다. 이 시를 읽을 때 시점이 중요하다. 인간 중심이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중심으로 읽어보면 상황이 달리 보인다. 아무리 단단히 ‘닫힌 창’이라도 그곳에는 ‘햇살’이 들어와 ‘온기’ 한 점을 주고 간다. 그뿐인가 ‘바람’은 오늘 어떤 꽃이 피었는가 알려준다. 바람에 묻어오는 꽃내음으로 저 산 아래 핀 꽃, 저 들판 핀 꽃을 부지런히 가져온다. 거기다가 ‘모기’까지 온다. 그런데 ‘모기’가 따끔하게 ‘침’을 놓는 모습을 ‘네 마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안부를 묻는 ‘발복’이라고 화자는 보고 있다. 닫힌 자기 방에서 자기 왕국으로 혹은 왕인 것 같지만 그건 당신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굉장한 철학자다. 모기 침이 찌르는 걸 ‘마음이 죽었나’ 싶어서 내게 베푸는 발복 행위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철학자를 방불케 한다. 빈틈없는 시적 형상화다. 사실은 모든 삼라만상과 교감한다는 화자의 상상력은 작품 속에서 감동의 지속과 확장을 거듭해 주고 있다. 철학으로는 시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철학이 빈틈없을 정도로 시적 형상의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