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54) 청계탑 고사 한마디 금강산 이야기(69) Q & A 게시판 28수 별자리 그림 이야기 대순광장 나누고 싶은 이야기 독자사연 동양고전 읽기의 즐거움 기획연재-우리 놀의의 문화사 과학 그곳에서 대순문예 상생의 길 알립니다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54) : 박공우가 상제님을 따르게 됨
박공우가 상제님을 따르게 됨
1904[甲辰]년 진보회(進步會) 발족 이후 속옷을 검은 옷으로, 외의(外衣)를 흰옷으로 입으시고 대삿갓을 쓰고 다니셨던 상제님께서는01 1907[丁未]년 6월 초이틀, 차경석의 간곡한 청에 따라 정읍 대흥리 그의 집으로 떠나시면서부터는 의관을 정제하기 시작하셨다. 가시는 도중에 원평의 한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 술을 사 주시며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차경석과 박공우는 동학의 간부급이었던 터였다. 상제님께서는 그런 차경석과 박공우를 앞에 두시고,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나는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희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 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동학 신도들 사이에서는 1864년에 참형을 당한 최제우[大先生]가 살아나서 다시 가르침을 펼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있었는데, 상제님께서는 차경석과 박공우에게 그들이 기다리는 선생님은 최제우가 아니라 바로 상제님이심을 알리신 것이다. 사실 최제우에게 제세대도를 내리신 분도 상제님이시고 또 거두신 분도 상제님이셨건만, 동학신도들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상제님의 이 말씀에 마음이 움직인 박공우는 드리던 49일 정성을 그만두고, 정읍으로 가시는 상제님을 따라 나섰다.
01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101호, 「진보회와 일진회Ⅰ」, pp.10∼15 참고. 02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79호, 「동학농민운동1」, pp.18∼19 참고. 03 “일심(一心)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예시 50절) 04 김탁, 「한국 종교사에서의 유교와 증산교의 만남」, 『한국 종교사상의 재조명』, 원광대학교출판국, 1993, p.32.
|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