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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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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나는 대순진리회 수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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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순진리회 수도인입니다
 
 

금릉2-4 방면 평도인 서아라

 
  알라딘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램프의 요정 지니는 소원을 한가지 말하라고 했다. 심각하게 고민하며 소원을 이야기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한심하게 생각했다.
  ‘바보, 소원을 10가지, 100가지로 늘려달라고 하면 되지!’
  세상엔 한가지 소원으로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던 걸까. 호기심도 지적 탐구도 많았던 나는 좋아하는 분야 책만 읽다가 내가 심리와 경영학에 흥미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율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2학년이 되어 전공을 선택할 때 심리학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신청했던 경영학 수업, 경영학 원론의 첫 구절에 매료되었다. 마케팅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라고.
  그때부터 나의 길은 마케팅이었고 졸업을 위한 최소한의 전공 외에는 마케팅 관련 수업만 들었다. 당시 대외활동과 공모전 열풍으로 학교에서 팀원들과 의지를 북돋웠고 해외 봉사와 어학연수를 좋은 조건으로 다녀오면서 성취감에 만족하며 살았다. 타이밍도 좋아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학교나 여러 기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사람들은 내 스펙을 보며 부러워했지만, 내 꿈은 직장인이 아니라, 진짜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였다.
  아무튼, 나는 이것저것 배우는 걸 좋아했고, 관심 분야가 많았다. 마케팅과 기획부서는 전국의 모든 대학생이 열망하는 직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한 느낌이 들었고 마케팅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열린 마케팅 사관학교 수업에 특강을 온 강사를 보며 컨설턴트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학부 때, 창업동아리와 창업 모임에 참여했다. 내 또래 학생들이 자기 아이템으로 창업을 꿈꾸는 눈빛을 보면 나도 열정이 생기고 부러웠다. 나도 언젠간 사업을 하고 싶은데, 당장 뛰어들어서 무언가를 해보기엔 주저됐다. 다행히 경영학과 출신으로 창업지원단 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환경들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문서 작업이나 약간의 정보를 주게 되었는데, 도움받은 친구들이 고마워하는 걸 보면서 성취감이 더 큰 걸 느꼈다. 내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보다, 남을 도와주는 게 행복감이 컸다. 그래서 한 팀이었던 친구와 기업가로, 컨설턴트로 성공해서 서로 도움을 주자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나는 창업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다. 그 당시 창업대학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극소수였고, 생긴 지도 얼마 안 돼 거의 황무지라 진로가 탄탄하지 않았다. 부모님 반대가 심했지만 1년간 설득 끝에 회사에 다니면서 등록금을 스스로 낸다는 조건으로 대학원에 응시했고, 인지도가 높은 대학 두 곳에 동시 합격했다. 행복한 고민 끝에 면접 때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대학을 택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정말 독특한 사람을 만났다. 같은 기수 아줌마인데 엄청 목소리 크고 사람들을 잘 이끌었다. 처음 보는 캐릭터였지만,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게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나조차도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40~50대 시니어, 자영업 세대인 같은 과 사람들보다 한참 어렸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내 목소리를 높여서 사람들에게 싹수가 없다고 평가받을 때였다. 그런 나를 다독여주고 내 처지에서 바라봐주고 사람들에게 나를 변호해주던 동기 아줌마였다. 학교 근처 숙소에서 어쩌다 룸메이트가 되어 처음에는 싫은 마음이 커서 밀어내기도 했다. 일부러 더 모질게 대하기도 하고 싫다고 했는데도 참 한결같았다.
  꼭 뭐 하나라도 간식을 챙겨주고 사람들에게 내 칭찬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숙소에 돌아가 회사에서 겪었던 일들, 이해 안 되는 사건들에 대한 고민 상담을 하면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을 해결해주었고, 2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어느새 ‘내 편’이라 믿게 되었다. 그러다 입도를 권유받았고, 이 사람이 하는 거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순진리회에 입도했다. 우린 동기에서, 선후각으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입도는 했지만, 긴가민가했던 수도였다. 회사는 대구에 포덕소는 서울에. 전화와 메신저로 교화를 들었다. 그러다 회사 부장님과 문제가 생겨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선감께 고민을 말씀드렸는데 『전경』 구절을 보내주셨다. 박공우가 돌을 맞아 복수하려 했을 때,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척이 그 사람에게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은인으로 생각하라는 내용이었다. 살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점이 명확하게 풀렸다.
  ‘왜 누구는 성공하고 실패하나? 성공에 법칙이 없는 건가? 왜 모두 다른 삶을 사는 걸까?’
  악연과 인연, 성공과 실패가 모두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이 도를 꼭 닦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강한 끌림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서울로 가서 수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당장은 회사에 다녀야 했기에 스스로 풀 방법을 물었다.
  “어떻게 하면 척을 감당하고 이겨나갈 수 있어요?”
  “기도를 모시면 신명 기운을 받을 수 있고, 사시 기도를 모시면 신명 기운이 세지는 거니까 기도를 모셔보세요.”
  그렇게 나는, 매일 사시 기도를 모시게 되었다. 아침잠이 많고 게으른 내가, 첫차를 타고 7시가 되기 전에 회사에 도착해 기도상은 없지만, 초와 향을 켜고 혼자서 기도를 모셨다. 마음에 늘 번뇌가 일어나게 하는 회사를 위해 심고 드리고, 나와 부딪히는 상황과 사람들을 전생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반성하며 청소를 했다. 직원들과 대표님이 처음부터 좋게 봐주진 않았고 혹자는 도대체 서주임은 무슨 목적으로 일찍 오는 거냐며 수군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에서 잘 지낼 수 있게, 회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심고 드리고 기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유명 전자상거래 회사에서 진행하는 특가의 날에 우리가 몇 주간 노력한 상품이 올라갔고,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로 이벤트가 진행됐다. 자정이 되는 순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살펴보며 고객의 질문에 답변해주고, 재밌게 재치있게 댓글을 달았다. 흥미 있어 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새벽 3시까지 살피고 댓글을 달다가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에 대박이 났다.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다며 너도나도 구매했고 행사 오픈 6시간도 안 되어서 1,300개 가까이 팔리고 마감할 때 2,800개가 팔리면서 하루 매출 3,200만 원, 식품 매출 TOP3를 찍었다. 이건 내 능력도 아니었고, 신명의 도움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다른 직원이 아무리 똑같은 방법으로 해봐도 그만큼의 대박이 나오진 않았다.
  입도한 지 3달이 되었을 때,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본격적으로 수도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내가 도인이 되어나간 건 참 더뎠던 것 같다. 당장 이력서를 내면 어느 회사라도 취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발만 물에 담그고 맞나 아닌가 도 닦기를 저울질했던 것 같다.
  그 후 상제님 생가터에 순례 갔을 때였다. 함께 오지 못한 수반, 나만 열심히 하는 건가, 열심히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아 마음도 울적하고 답이 찾아지지 않아 임원께 상담했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생가터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묵념하듯 심고를 드렸다. 누군가 포근히 안아주듯이 따뜻한 기운이 몸에 감돌았고 ‘설마 상제님이 살펴주시는 건가?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한 순간, 기운이 맑아졌다. 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꼈다.
  그리고 도장 식당 당번을 제안받고 도장에 갔는데, 도인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힘들어도 실수해서 한소리 들으면서도 끝까지 해내는 게 감명 깊었다. 그래서 한 달간 식당 당번 하겠다고 자원해버렸다.
  우리 방면은 요리해 본 적이 없는 젊은 내외수가 많아 소통이 빨리 안 되니 종사원분께서 작업 지시를 해도 여러 번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고 일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도 주눅 들기 쉬운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즐겁게 힘내서 작업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간절함으로 매일 기도 때마다, 작업 전후로 심고 드렸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일은 먼저 나서고, 웃을 수 있도록 밝게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단지 그 마음뿐이었는데, 엄청난 나비효과가 일어났다. 작업하면서 이렇게 즐겁게 한 건 처음이라며 다들 서로 힘내자고 하면서 실수해도 서로 이해하고 너 잘못은 내 잘못이라며 한마음으로 일했다. 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하나같이 좋아하지 않던 일들인데 함께 하니 얼마나 재밌고 뿌듯한지, 작업하면서 부엌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감명 깊었던 순간은 축시 기도를 모시면서였다. 새벽 5시 반에 일을 해야 하니 다른 사람은 자는 시간에 축시 기도를 모시는 사람이 몇몇 있어서 나도 친해진 도인과 함께 『전경』 토론으로 잠을 이기고 기도를 모셨다. 그러다 군부대가 발맞춰 오는 듯 일념교를 넘어오는 외수들을 보았다. 그들은 4시 반에 작업을 나가야 할 텐데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줄 맞춰 오는 모습이 아이돌 못지않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매일 기도를 모시는 모습과 작업하다 잠시 쉬는 틈에도 『전경』을 읽고 『대순진리회요람』을 외우는 도인들의 성심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나도 저런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식당 당번을 하면서 임원분께 교화를 듣는데, 내가 믿는 만큼 상대방에게 전해진다고 하셔서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대순진리회 도인인 것이 어떤지 자문하였을 때 예전보다 거부감이 반 이상 줄어든 내 모습을 확인했다. 이유가 뭘까? 나를 돌이켜봤을 때 떠오르는 추억들, 도장 치성 때 이른 새벽부터 나와 한마음으로 많은 일을 해내고, 수도하면서 각자의 개성대로 아름답게 발효된 도인들의 매력에 존경심이 들었고 나도 저런 도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수도를 지속하고 있는 일꾼들 삶의 현장을 보면서 수도가 엄청 큰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도한 지 1년이 될 즈음 금강산연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방면에서는 그간 수도하느라 힘든 몸과 마음을 시원한 도장에서 피서하고 오라고 해주셨다. 여러 방면이 모여 단체생활을 하니 강의를 들을 때 졸거나 하지 말고 행동에 주의하라며 내가 방면의 얼굴이니 잘하고 오라고 하셨다. 마음에 부담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설레면서, 연수를 기다리던 날 우연히 선감 책상에 달력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서내수 금·연’이라 적혀 있었다. 순간 금연이 뭐지? 하다가 선감께서 금강산연수 일정을 기록해주신 거구나 하고 감동했다. 말수가 별로 없고 이렇다저렇다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달력에다 기록해서 챙겨주시는 마음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래, 금연인데 뭐라도 안 좋은 걸 끊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방면 사람들의 응원을 든든히 받고 출발한 연수. ‘피서’라 기대한 연수는 ‘대서(大暑)’였고 하루에 3~5번을 씻을 정도로 덥고 땀이 많이 났다. 분명 시간상으로 여유가 많은 연수랬는데, 씻고 준비하고 챙기기 정신없었다. 교화도 졸지 않으려 했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서는 여지없이 졸고 있었다. 이러려고 연수 온 게 아닌데, 나도 잘 듣고 가고 싶은 간절함이 올라왔다. 행복하게 연수에 참여하는 도인들에게 이런 고민을 상담했다. 마음을 열고 들으면 된다고 했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다름을 받아들이라고. ‘아차, 이거였구나. 내 틀에서 보려고 했구나!’ 셋째 날부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말 열성껏 참여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방면 분들께서 이쁘게 보셨는지 불러서 챙겨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주고 참 많이 예뻐해 주셨다. 질문하는 것도, 발표하는 것도 한번 해보라고 옆에서 기운도 주시고 박수도 열화와 같이 쳐주셨다. 나도 어느샌가 나이 차이도 한참 나고 세대도 다르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도인분들을 정겹게 대하고 존중하고 있었다. 어쩜 저렇게 성심이 지극하실까, 소녀처럼 순수하실까. 저렇게 정성 들이는 마음을 많이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분들께도 존경심이 들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에도 도전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굳건히 지키는 지극한 성심을 보면서, 말씀 하나하나에서 도전님에 대한 마음이 전해졌다. 비록 뵙지 못했지만 도전님의 은혜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고 도전님 묘소 앞에서 심고 드리면서 지난 수도를 반성하고 수도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함이 울컥해서 눈물도 펑펑 쏟았다. 묘소를 찾아갈 때마다, 도전님께서 다독여주신 듯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환경과 사람으로 힘들었던 마음이 모두 한마음으로 수도하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다르다는 것’은 내게 상대방과의 벽이었다면 ‘상호 이해’를 하면 다르지만 같아지고 서로가 통하는 것이다.
  겁액을 극복하고 싶어서 시작한 수도였고 심오한 진리를 배우는 게 좋아서, 또 세상 사람들과 달리 다름을 욕하지 않고 다독여주면서 함께 수도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법좌가 익숙하지 않아서 쥐가 나고 한복도 어색하고 배례를 빨리 따라 하는 것이 힘들고 어떻게 주문을 다 외울 수 있을까 자신감이 없었던 때도, 도장 치성 때 시립이 너무 길고 힘들었어도 이 악물고 버티던 때도, 수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복이 나오는 것도, 포덕·교화·수도로 도의 일에 전념하는 도인들이 정말 신기했다. 어려워하던 부분은 간절하게 심고를 드리던 나였는데, 어느새 심고 없이도 잘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포덕을 마음먹으면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연결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내가 도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모두 상제님의 덕화라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도라면 옛것이라 고루할 것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부분도 많았고, 우리의 전통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아쉬웠던 부분도 대순진리회 도인들은 한복을 입고, 단청한 건물로 민족종교의 정신을 지켜왔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사랑, 성공, 행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지 않아 신기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성공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인데 말이다. 그런데, 상생이란 단어를 배우면서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고 더 큰 개념임을 알게 됐다.
  재리에 눈이 어두웠고 나만을 위해 살던 내가, 남을 잘되게 하라는 신념을 되뇌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재능을 살려 사회적 기업가들과 인연을 맺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부분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도담을 녹여서 말하고, 만나는 이들이 상제님의 덕화를 입을 수 있도록 심고 드리고 있다. 한때는 포덕 호수에 연연했는데, 지금은 그저 모든 생명이 상제님을 알 수 있기를 심고 드리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대순진리회의 얼굴이 됨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되기보다 나 때문에 상처 입고 원 맺힌 수많은 존재에게 반성함을 기본자세로 가지려 하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신명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해서 신명을 닮으려고 노력한다.
  대순진리회 도인이라 당당히 밝힐 수나 있을까 걱정되던 내가 지인에게 대순진리회 도인임을 커밍아웃하게 된 것도 내겐 대단한 변화다. 사람을 살리는 포덕, 상제님의 덕화를 알려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대순진리회 도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마블 히어로보다 더 대단한 히어로다.
  나는 요람에서, 성경신의 신을 자주 외우곤 한다. 수도하기로 정하였기에 앞으로도 어떤 일이 생기든 수도를 이어 나갈 것이며, 포덕 천하의 과업을 달성할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었을 때 상제님께 인사드릴 그 날을 상상하며, 앞으로도 나는 당당한 대순진리회 수도인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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