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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0년(2020)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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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에세이 : 화이부동(和而不同)

화이부동(和而不同)



연구원 김귀만




  사회는 다양성으로 가득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얼굴 생김새부터 시작하여 성격과 체질이 다르고 지적 수준이나 경제적 여건, 정치적 성향과 삶의 경험 등이 모두 다르다. 이러한 다름이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문제를 놓고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과 의견이 사람마다 다를 경우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서로의 주장만을 앞세우다 보면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체계 속에서 소통을 중시하는 우리의 수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논어』에서 언급하고 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은 화합의 과정에서 구성원들에게 진정 필요한 소통의 방법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01


  『논어』에서는 군자와 소인이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에 대해 위와 같이 비교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고 뇌동(雷同)하지 않지만, 소인은 뇌동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라고 풀이한다. 뇌동이란 만물이 천둥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같이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 없이 남을 따라 찬동함을 이른 말이다.
  군자가 화이부동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적(公的)인 가치에 대한 헤아림이 소인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고 하였는데,02  주자(朱子)는 여기서 “의는 천리(天理)의 마땅한 바이고, 이는 인정(人情)이 하고자 하는 바이다.”03라고 주석하였다. ‘천리의 마땅함’이라는 것은 누구에나 통용되는 공적인 가치이고, ‘인정이 하고자 하는 바’라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감정에 이끌린다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사사로움으로 흐르기 쉽다.
  이러한 면에서 군자가 의에 밝다는 것은 남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 자신의 사적인 뜻보다는 모두가 함께한다는 공적인 마음을 앞세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의견이 자신의 이익에 배치되더라도 보편타당한 가치에 맞으면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이므로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지 않는다. 반면 소인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파당(派黨)을 짓고 그 안에서 부화뇌동을 일삼아 사익을 추구하므로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게 만든다.
  우리가 상제님의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화합의 중요성은 늘 강조된다. 우리는 얽히고설킨 일도 구성원들이 자신의 사심을 내려놓고 화합할 때, 어느 순간 풀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화(和)라는 것이 목적은 아닐지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소통하여 상제님의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훈시의 내용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도전님께서는 우리가 일을 해 나갈 때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잘 조화해야 함을 ‘하나의 그릇’이라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여기에 하나의 그릇이 있다고 합시다. 이 그릇을 깨뜨려 산산조각을 냈을 때,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이 그릇의 일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조각들 하나하나가 그릇의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조각들을 전부 모아 붙여 놓아야만 비로소 완전한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지만, 한 가지의 의견만으로 우리의 일을 해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각기 다른 다양한 의견을 모았을 때에야 우리의 일은 이루어지게 됩니다.”04



  깨진 그릇이 원래대로 그릇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 조각조각을 모두 붙여야만 가능하다. 조각이 하나라도 없다면 그 틈으로 물이 새어 그릇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나의 조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모두 붙이는 과정과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군자는 공적인 이치로 깨진 조각을 조화롭게 이어붙여 원래의 그릇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반면 소인은 사심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이어나가 결국 부분에만 얽매여 그릇의 틈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의 조각, 한 명의 구성원이 사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결코 하나의 그릇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먼저 사의(私意)를 버리고 공심(公心)으로 소통한다면 각기 다른 다양한 의견이 조화를 이루어 결국 ‘하나의 그릇’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화(和)의 실천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화합하려면 소통이라는 과정이 필요하고 소통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가 사적인 이익보다 공적인 가치를 먼저 생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사로운 뜻을 접어두고 공사(公事)를 생각하는 마음을 앞세우는 것이 ‘화이부동’이라는 고전의 한 구절에서 우리가 배울 가치가 아닐까 한다.







01 『논어』 「자로」,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02  『논어』 「이인」,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03 『논어』 「이인」 朱子注, “義者天理之所宜, 利者人情之所欲.”
04 《대순회보》 11호, 「도전님 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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