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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0년(2020)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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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있는 풍경 :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



연구원 이은희


  수도 생활을 한 지 십여 년이 넘었을 때의 일이다. 사심(私心)에 사로잡힌 부끄러운 사건 하나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군복 입은 한 청년이 왼손에는 우산, 오른손엔 종이 가방을 들고 5미터 정도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비에 젖은 종이 가방 밑이 갑자기 터져 내용물이 길바닥 위에 쏟아졌다. 휴가를 갓 나온 듯한 청년은 멈춰 서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터진 종이 가방과 물건을 바라보았다. 순간 내 가방 안에 있는 천으로 된 시장바구니가 떠올랐다. 천으로 된 가방이면 비를 맞아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애용하던 물건을 주려니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흰 꽃무늬가 있는 연노란색 시장바구니는 후각이 선물해준 것이었다. 작게 접어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 좋고, 색도 예쁘고 튼튼해서 애용해 왔었다. 그래서 막상 주고 나면 나중에 아쉬울 것 같고, 이처럼 편리하고 예쁜 시장바구니를 다시 구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주지 않아도 될 정당한 이유를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찾고 있었다. 끝내 말 한마디 꺼내 보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청년 옆을 지나치고 말았다.
  당시 가방을 내밀었다면 청년이 거절할 수도 있고, 감사히 받더라도 그때만 쓰고 휴지통에 버렸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 사심에 사로잡혀 남을 잘 되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입도한 후 십 년 넘게 ‘남 잘 되게 하는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내 몫’ 챙기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니, 수도가 이것밖에 안되었나 하는 뉘우침이 일어났다. 지난 2001년 일본에서 유학하던 이수현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보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각 행동했는데, 작은 부분에서조차 나를 내려놓고 남을 돕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이 사건은 나에게 사심의 유혹에 덜 흔들리고 남을 돕도록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상제님께서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교법 1장 2절)라고 하셨다.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명숙(전봉준)은 신분의 차별로 소외되고 천대당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만들어 주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봉기했다. 결국 실패하여 교수형을 당했지만 죽어서 잘 되어 신명계에서 조선 명부의 직책을 맡았다. 전명숙의 예를 볼 때, 남이 잘 되고 남은 몫만 차지하더라도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수고스럽더라도 남이 잘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할 때 오히려 더 큰 복이 따를 수 있으며, 나로 인해 누군가가 잘 되어 기뻐한다면 그 자체로도 나는 뿌듯한 보람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실천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지만 쉽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내 몫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마법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어 보인다.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만큼 이 세상에 뿌듯하면서도 재미있는 공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생각은 사심의 유혹에 덜 흔들리게 하고, 수고로움을 달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우리 도장 벽화 심우도(尋牛圖: 소를 찾는 그림)의 도통진경 단계에서 고삐 없는 소 위에 편안하게 걸터앉아 두 손으로 피리 부는 동자처럼, 사심에 흔들림 없이 남을 잘 되게 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오늘도 더욱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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