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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회관 소개 : 경산 방면 수성회관

경산 방면 수성회관



출판팀


▲ 수성회관 전경 (2024년 4월 17일)



  여름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낮 기온이 올라간 4월 중순,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에 있는 경산 방면 수성회관을 방문하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대구 시내에 들어서니 곳곳에 영산홍이 활짝 폈고 벌써 색이 바래지는 꽃도 있었다. 여주에는 이제 영산홍에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는데 벌써 꽃이 지려고 하다니… 대구의 높은 기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회관에 도착하니 붉은벽돌의 외벽에 ‘대순종단수성회관’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 앞에서 박정자 선감이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박선감은 1980년 대구에서 입도하고 1989년에 상급임원 임명을 모셨다. 박선감은 입도하기 전 머리는 깨질 듯, 어깨는 돌덩이를 얹은 듯 아프다가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하곤 했는데 흔히 말하는 신병이었다. 무속인을 만나면 대한민국 돈을 다 모을 수 있을 거라며 신을 받으라 하니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여러 종교를 찾아다니다가 선각을 만나 입도했다고 한다. 그 후 수도에 뜻을 세워 포덕을 했다.


▲ 수성회관 주변 전경



  1980년대 중반, 대구에서 수도하던 경산과 포항 등등 여러 방면이 힘을 모아 땅을 샀고 사정이 여의찮아서 회관을 못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전님께서 그 땅에 회관을 지으라고 포항 방면에 말씀하시면서 땅 살 때 돈을 냈던 여타의 방면에 낸 돈을 돌려주라고 하셨다. 거기에 더해 경산 방면도 회관을 짓고 성화를 모시라고 분부하셨다.
  마침 쓰던 회실이 단층 주택이라 도인들이 한꺼번에 모이기에 불편함을 느꼈는데 땅값을 돌려받은 데다가 회관을 지으라는 도전님 명을 받았으니 바로 터를 알아보고 다녔다. 한참을 찾아보아도 적임지가 나타나지 않아 도전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땅을 사지 말고 건물을 사서 증축하라고 하셨다. 곧 괜찮은 건물을 소개받았는데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3층 건물로 규모도 적당하고 튼튼했기에 바로 계약했다. 1987년의 일이었다.


① 3층 성화실 입구
② 2층 집회실
③ 4층 봉심전 입구



  4층을 증축해서 봉심전을 올리고 3층에는 성화실을 마련하였다. 공사는 방면 도인들이 진행했고 단청은 도장에서 전문가를 보내주어 도움을 받았다. 2층은 집회실과 내ㆍ외수 대기실이고 1층은 사무실과 식당이다. 외벽을 붉은벽돌로 마감하고 대(大)자 문양도 넣었다. 지붕에 기와를 올려 완공한 회관에서 1988년 음력 11월 15일에 첫 봉안치성을 모셨다. 박선감은 회관을 지었던 과정을 돌아보며, 준비된 자금이 별로 없었는데 건물을 매입하고 증축하는 동안 필요한 만큼의 돈이 시기에 맞춰 들어왔고 회관을 완공하고는 남은 것 없이 딱 맞아떨어져서 신기했다고 한다.
  회관 완공 후 1989년 봄 무렵, 도전님께서 회관에 오셔서 일꾼들을 격려하셨는데 박선감은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기자 또한 인터뷰 전 봉심을 올리면서도 도전님께서 들르신 회관에서 수도하는 도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① 3층 성화실
② 벽화 확대
③ 벽화 확대





  회관에서 수도를 하며 포덕이 번창하자 생활 공간과 주차 공간이 더 필요했고 회관 옆의 건물을 하나씩 매입했다. 그러던 중 도장에 신위 문제로 분규가 생겼고 경산 방면은 직격타를 받았다. 당시 회관에서 함께 수도하던 방면이 신위를 바꾸는 쪽으로 선택해 주문을 달리한 것이다. 기도를 모실 때마다 주문이 다른 부분에서는 서로 소리를 높였다고 하니 얼마나 속을 태웠겠는가. 도전님의 분부로 성화를 모셨고, 도전님의 자취가 있는 회관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방면 도인들은 자리를 비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상대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방면의 일부는 따로 회실이나 포덕소를 마련하여 독립했다.
  그렇게 7년을 버텼고 상대측도 견디기 힘들었는지 별관을 지으려고 마련했던 회관 옆 터를 요구해서 내줬고 그들은 그 자리에 건물을 지었다. 게다가 상제님 진영과 성화도 가져가려 했으나 절대로 안 된다고 끝까지 맞서 지켜냈다. 그들이 떠나고 회관을 되찾았을 때 방면 도인들 모두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봉안치성을 모시던 날도 다 같이 울었다. 주차장과 생활 공간을 내어줬지만, 회관을 지키고 수도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대기실에 칸칸이 이름이 쓰인 사물함을 보니 서로 배려하며 공간을 활용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① 1층 식당
② 회관 앞 8차선 도로
③ 2층 내수 대기실 사물함



  수성회관을 지키기까지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회관 앞에 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되었고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던 가로수도 사라지면서 시야가 트이게 되었다. 전에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돌아 건널목을 건너왔어야 했는데 길이 정비되면서 버스 정류장도 추가로 생기고 건널목도 가까이에 생겨 도인들이 회관에 오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이럴 때를 이르는 말인가 보다. 어려운 시기를 잘 겪어낸 수성회관에 더 많은 도인이 편하게 들어오길 심고 드리며 취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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