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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최배달 선생의 정신수련에서 영감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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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 선생의 정신수련에서 영감을 얻다



잠실37 방면 선무 이원홍



  저는 몇 달 전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운동을 시작하면서 무술에 관심이 생겼다가 우연히 최배달이란 인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극진 가라데 창시자인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본 사람이 아니면 생소한 인물일 것입니다. 이분의 생애를 제 수도에 대입해보니 여러 가지 영감을 얻게 되어서 글을 써봅니다.
  재일교포였던 최배달은 일본 이름이 ‘오야마 마스타츠’로 한자로 읽으면 ‘대산 배달(大山 倍達)’이 됩니다. ‘조선은 배달의 민족’이라는 의미에 뿌리를 두고 본인의 민족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지은 이름으로 최영의라는 본명보다 더 알려졌습니다.
  최배달은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6월 4일,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서 6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나 부농의 아들로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겁이 많던 유년 시절부터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공부는 안 하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다니니 아버지가 화가 나 경성(서울)의 중학교로 입학시켜버렸습니다.
  이 학교는 기독교 학교였는데 최배달은 당시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라는 책을 읽다가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없는 주먹은 폭력이다”라는 글귀에 크게 감명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복싱을 배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홀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일본의 항공정비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조영주를 만나 그에게 가라데를 지도받습니다. 태평양 전쟁 이후 대학생이던 최배달은 다니던 와세다대학 체육과를 중퇴하고 조영주와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가라데를 배우게 됩니다. 이 시기에 미군들이나 재일조선인들과 자주 싸움을 하며 실전 가라데의 기반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싸움의 중심에 있던 최배달은 결국 일본 경찰의 표적이 되어 감시받게 되고 이후부터 산속에 숨어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무술을 단련하고 하산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가라데 고수와 맞붙는 일명 ‘도장깨기’를 하여 모든 대결에서 전승을 거뒀습니다. 그때부터 유명세를 떨쳤고 전국 각지에 수련생들이 늘어나 그의 많은 명언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그의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이 없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살아가면서도 그렇고 도에서도 배우는 것들은 많은데 실천하지 않으면 지식을 배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면서도 저는 여태까지 교화를 들어도 실천을 못 했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하기가 번거롭고 자주 잊어버려 실천을 못 하니 불평불만만 쌓이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언을 듣고 최배달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니 끝까지 실천으로 증명했습니다. 산에서 수련할 때 마음이 약해지면 더 강한 수련을 한다든지, 가라데 관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식의 극진 가라데를 발전시킨다든지 자신의 길을 증명하기 위해 실천했습니다. 저도 여기서 교훈을 얻어, 스스로 잘되지 않아 방치하고 있던 저의 습관을 하나라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말에 집중을 못 하고 잊어버리곤 했는데 이걸 고치기 위해 메모하거나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 과소평가해서 도전을 회피하곤 했는데 이를 계기로 마음을 이겨내고 도전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무시와 저의 실패가 두려워 포기하려고 했지만 못 하더라도 실력을 키우기 위해 실천하자는 생각으로 어렵게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성공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에게 용기를 준 명언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서울 때는 상대도 무서워. 상대는 신이 아니야!”입니다. 저는 줄곧 갈등이 무서워 피하기만 하며 살았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혼날까 봐 실수를 감추고 거짓말을 한다든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친하게 지내지 못하거나 가족과 마찰이 있어도 사과를 못 하고 후회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다른 뜻일 수도 있지만,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의 두려움을 인정하면 갈등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야 조금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지금 싸우고 있는 적이 마지막 적이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번엔 지지만 다음엔 이긴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 지면 다음은 없다. 이미 그대는 적에게 죽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는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험공부 할 때 ‘다음 기회가 있어서 괜찮다’, ‘떨어져도 실망할 것 없다’, 그리고 ‘다음이 있으니 이 정도만 하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조금 하고 결과만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열심히 했는데 안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하곤 했는데 저는 이미 적에게 죽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결과만 생각하고 과정을 소홀히 하는 습관이 들어 반복하기만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최배달 선생의 일화 중 가장 크게 감명받은 부분이 바로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일화로 유명해졌습니다. 평소 수련을 할 때 황소와 대련을 하곤 했는데 하루는 그의 아들이 어떻게 황소를 이길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1. 100m를 11초에 뛰기 2. 벤치 프레스 150~160kg을 쉽게 들어 올리기 3. 단청을 (한 서까래를) 손가락 세 개로 잡아끌어 배에 붙일 수 있을 것 4. 한 손 새끼손가락으로 턱걸이 15개 하기 5. 엄지와 검지만으로 동전 구부리기를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최배달은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을 매일 같이 단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과정을 보지 못하고 황소를 이기는 것만 보고 찾아온다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황소를 쓰러뜨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제게 최배달 선생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떤 걸 하든 항상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고 결과만 제대로 나오길 바랐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늦은 깨달음이지만 선생의 교훈을 되뇌며 과정을 바로 밟아가도록 저를 성장시키겠습니다.
  이 밖에 “강함보다는 사람으로서 따뜻하게 받아주는 그런 사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상함이 있고 따뜻한 인간성을 가진 그런 사람이 더 좋다. 그것은 강함보다 한 차원 더 높다” 등 다양한 명언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항상 수도하면서 저의 목표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제 모습을 반성하거나 개선할 부분을 위해 노력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배달 선생의 일생을 알게 되면서 제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상대를 탓하고 힘든 것은 잊으려고만 했지만,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갖고 피하기보다는 직면해서 도전해보는 방향으로 저 자신을 단련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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