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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2년(2012)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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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73) : 너희는 죽는 일을 장차 나에게서 보라

너희는 죽는 일을 장차 나에게서 보라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8[戊申]년 11월, 상제님께서는 와룡리에서 동곡약방으로 돌아오시어 창생을 구제하시기 위한 공사를 계속하셨다.

  어느 날 상제님께서는 기차 기운을 돌리는 공사를 보셨으니, 그 공사는 백지로 책을 한 권 묶어 내시고 그 책을 세로로 잘라서 나온 조각들을 일일이 붙여 하나로 길게 연결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상제님께서는 철도를 연상시키게 하는 그 긴 종이조각을 약방 앞에 있는 감나무 높이에 맞추어 자르시고 종이조각들의 한 끝을 약방 문구멍에 끼워놓고 방 안에서 말아 감으셨다. 이때 신원일은 소나무의 푸른 가지에 불을 붙여 부채로 부쳤다. 그러자 동곡약방이 크게 흔들렸고, 종도들은 놀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제님께서는 종이조각들을 다 감으신 후 김경학에게 그 종이말이를 뒷간의 보꾹에 달아매고 불을 붙이게 하셨다. 그리고 빗자루로 부치게 하시니 불길이 크게 일어 뒷간이 모두 탔다. 다시 상제님께서는 김경학에게 종이말이가 모두 탔는지 확인을 시키셨다. 김경학은 뒷간 옆의 대나무 가지에 타다 남은 종이 한 조각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끄집어내어 마저 태우려고 했다. 그 순간 상제님께서 하늘을 바라보시고 “속(速)하도다.” 하시니, 종도들도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햇무리가 서고 있었는데 아직 원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이 터져 있었다. 김경학이 남은 종이조각을 마저 태우기 시작하자, 그 타는 바에 따라서 햇무리가 원을 이루며 완전히 섰다. 상제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기차 기운을 돌리는 공사라.”고 알려주셨다.

 

 

 

  11월 하순경, 김광찬은 개벽공사가 속히 결정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나는 자살하겠노라.”고 말하여 분위기를 흐리게 하였다. 원래 김광찬은 글깨나 하고 필체도 좋았지만 불평을 잘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이를 보시고 상제님께서는 “모든 일에 때가 있나니 마음을 돌려 어리석음을 벗으라. 너희는 죽는 일을 장차 나에게서 보라.”고 일러주셨다. 이 말씀은 “너희가 아무리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할 것이요 내가 놓아주어야 죽느니라.”고 하신 가르치심과 서로 통하는 것이었다.01

  상제님께서는 김광찬의 이 불만을 심히 괴롭게 여기시고는 김형렬에게 “광찬이 자살하려는 것은 제가 죽으려는 것이 아니요 나를 죽으라는 것이니라.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뒷일은 네게 통지하리라.”고 말씀하셨다.

 

▲ 새울의 현재 모습. 새울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앞의 상일·중일·흥이·흥삼마을 일대를 말한다.

 

 

 그 무렵 정읍 대흥리에 있던 고부인(高夫人)이 안질을 앓고 있었고, 차경석의 장남인 희남(熙南)도 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차경석은 첫째 동생인 차윤경02을 보내 상제님께 이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차윤경은 급히 상제님께서 계시는 동곡약방으로 달려갔는데, 상제님께서는 벌써 이 사실을 아시고 김자현과 김광찬 등 종도 10여 명으로 하여금 그를 마을 입구에서 마중토록 하셨다. 차윤경이 상제님을 배알하니, 상제님께서는 “내일 살포정03에 가서 나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다.

  차윤경은 정읍 대흥리로 돌아간 뒤 그 다음날인 11월 28일 새벽에 살포정으로 향했다. 상제님께서도 박공우를 데리고 동곡약방을 떠나 출발하셨다. 그런데 차윤경이 너무 일찍 출발한 탓으로 그가 살포정에 당도하고 보니 아직 상제님께서는 오지 않으신 상태였다. 그는 상제님을 급히 뵐 요량으로 동곡약방에서 오고 계실 상제님을 중로에서 뵙기 위해 살포정을 떠나 동곡약방으로 향했다. 그가 태인 소퇴원04 고개의 주막을 막 지나치는데, 갑자기 그곳의 주막 주인이 그를 불러 상제님께서 윤경이 그곳을 지나면 새울로 오도록 말해주라고 시키셨음을 전하였다. 상제님의 예지에 감탄한 그는 즉시 새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서 의병을 토벌하러 다니던 일본군 수백 명을 만나 검문을 받게 되자 그는 가환(家患)으로 의사를 모시러 가는 길이라고 하여 무사히 통과하였다. 드디어 새울에 도착한 차윤경은 상제님을 뵙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그에게 고부인과 희남의 병세가 어떠한지 물으시니, 그는 새벽같이 집을 나섰기 때문에 그들의 병세를 알지 못한다고 아뢰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네가 무엇 하러 왔느냐!”고 꾸짖으시니, 차윤경은 어쩔 줄을 몰랐다.

 

 

 

  차윤경은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시급히 고치고자 하는 마음에 서둘러서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섰고, 살포정에 너무 빨리 도달한 나머지 마음이 급해서 거기서 기다리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어기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굳이 상제님께서 오고 계시던 쪽으로 가버렸다. 이미 이 사실을 모두 알고 계셨던 상제님께서는 소퇴원 주막 주인에게 동곡약방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를 불러 세워 새울로 가도록 일러주게 하셨던 것인데, 차윤경은 부지런했던 것은 좋으나 그것이 넘쳐버려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차윤경을 꾸짖으심은 이런 그의 잘못을 깨우쳐주심인지도 몰랐다.

  이날 밤 상제님께서는 차윤경에게 밤이 새도록 문밖을 돌게 하셨다. 차윤경이 졸음을 쫓아가면서 문밖을 돌고 있으려니 첫 닭이 울고 새벽이 되었다. 상제님께서 “네가 졸리지 않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졸리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여쭈었다. 상제님께서 “그럼 나와 함께 백암리로 가자.” 하시고 그를 데리고 길을 나서셨다.

 

▲ 노송정이 있었던 전북 정읍시 북면 복흥리 노송동의 현재 모습. 이 마을 촌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노송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마을 뒤쪽 언덕배기에 큰 노송(老松)이 있었고, 그 노송 밑 그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에 노송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노송정 밑에는 길모퉁이가 있으며 이곳의 연못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상제님께서는 백암리의 김경학 집에 이르셔서 조반을 잡수시고 정읍 대흥리로 길을 나서셨다. 차윤경을 비롯한 다른 종도들을 앞세우기도 하고 뒤에 따르게도 하시며 얼마동안 가시다가 “일본 사람을 보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더니, 정읍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셨을 때 “좀 지체하였다가 가는 것이 가하다.” 하시고 반시간쯤 길가에 멈추어 쉬셨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셨는데, 종도들은 노송정의 모퉁이에 있는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일본 기병들이 이곳으로 오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되돌아간 많은 말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이때 상제님께서 “대인의 앞길에 저희들이 어찌 감히 몰려오리오.”라고 외치셨다. 옆에 있던 차윤경이 행인에게 일본사람들을 보았는지 물었더니, 그 행인은 수십 명의 일본 기병들이 이곳에 달려왔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정읍 대흥리에 당도하신 상제님께서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돌보시니, 그들은 곧 건강을 회복하였다.

 

▲ 노송정이 있었던 전북 정읍시 북면 복흥리 노송동의 현재 모습.

 

 

 


01 『전경』, 교법3장 35절.

02 차경석 형제들은 모두 넷으로서, 첫째가 경석(본명은 輪洪), 둘째가 윤경(輪京), 셋째가 윤칠(輪七), 넷째가 윤덕(輪德)이었다.

03 現 전북 정읍시 북면 장학리 장재마을.

04 現 전북 정읍시 옹동면 용호리 솟튼터널 위의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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