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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2년(2012)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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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의 만남 : 신(神)에 취한 철학자, 스피노자

신(神)에 취한 철학자, 스피노자

 

 

연구위원 김대현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스피노자(Spinoza, Baruch, 1632~1677)의 명언입니다. 사실 이 말이 스피노자의 말인지에 대해서는 그 진위가 명확하진 않지만 스피노자의 이름을 낯설지 않게 해 준 데는 어느 정도 일조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철학사에서 스피노자는 참으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그를 ‘철학자들의 그리스도’라고 표현할 만큼 그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괴테가 말했듯 ‘신에 취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신(神)’에 대한 견해에 대해 한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번에 스피노자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최소한 그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신과 자연(우주)’을 성찰했던 스피노자라는 또 다른 천체망원경을 접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겠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신은 곧 우주와 자연 자체로서 우주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을 범신론(汎神論)이라고 하는데 신을 종교적인 절대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본 것입니다. 이러한 신에 대한 그의 이해는 나름의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실체(實體)’와 ‘양태(樣態)’라는 스피노자의 두 가지 주요 개념을 보겠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실체는 우주 전체의 근원적인 모체로서 무한하고 영원한데, 이것의 변화가 바로 우주와 자연인 것입니다. 이 실체는 이전의 다른 원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그 스스로가 곧 원인입니다. 예를 들어, 저절로 살아 움직이는 찰흙 덩어리가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찰흙 덩어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된 것이 우주이고 자연인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의 찰흙 덩어리 그 자체는 실체라 하고 찰흙이 변용되어 만들어진 다양한 모습 즉 우주와 자연을 양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양태는 크게 두 가지 속성으로 나누어 설명되는데 하나는 물질(연장延長)이며 하나는 정신(사유思惟)입니다. 스피노자에게는 이 두 속성이 하나의 실체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하나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연을 스피노자의 사유방식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요? 산과 나무, 바다, 동물, 인간 그 모두가 하나의 실체인 신의 변용으로 드러난 개체들이라면 막연한 신의 존재가 좀 더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실체로서의 신이 각각의 다양한 개체로 드러나더라도 그것은 신인 것입니다. 단 그때의 신은 양태로서의 신인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자연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라기보다는 신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이루어진 결과인 셈이며 신은 우주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닌 우주 그 자체일 뿐입니다.

  스피노자는 이것에 대해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능산적 자연은 능동적인 변화의 힘으로서의 자연의 모습이며 소산적 자연은 그 힘에 의해 나타난 수동적인 결과물인데 이 상반된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결과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스스로가 창조적 주체이면서 곧 그 결과인 것입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자연관 속에서 모든 만물은 평등하게 소중한 가치를 부여받게 됩니다. 귀하고 천함이 없이 어떤 존재이건 신이 드러난 양태로서 신의 생명성은 그대로 그 아래에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 존재 사이에는 어떠한 계층적 위계도 없으며 티끌같이 미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강한 힘에 의해 지배될 대상은 아닌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스피노자의 신과 자연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이 의견에 대해 이견도 있을 것입니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적인 견해는 특히 절대자의 상징적 이미지를 늘 품고 있는 종교적 입장에서는 쉽게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견해와 마주쳤을 때 오히려 우리는 닫혀 있던 지성의 한 부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우주 속에 담겨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주가 아닐 것이며 신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신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듯 진정한 신과 우주에 다가서는 데 있어 무한히 열려진 지성이야 말로 가장 겸허하고도 이상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아울러 도(道)의 무궁무진함을 의식의 터전으로 세계의 모든 지성을 담을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지성의 개벽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철학자의 삶과 에피소드-안경렌즈 깎는 철학자

 

  스피노자는 1632년 덴마크의 암스테르담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스페인에서 이민 온 유태인의 자손인 그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 부친의 뜻으로 유태교 목사를 꿈꾸며 자랐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기독교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네덜란드 신학자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스승의 딸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승의 딸은 다른 구혼자가 내민 값비싼 선물에 스피노자를 저버리게 되고 스피노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신을 사랑하지만 신으로부터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 대로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실연을 계기로 그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깊이 매진하기 시작합니다.

  스물두 살 되던 해 스피노자는 아버지를 여의고 가업을 계승하지만 사업보다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강해 결국 사업을 정리하게 됩니다. 스물네 살 되던 때에 스피노자는 또 한번 인생에 커다란 사건을 맞이합니다. 종교적인 문제로 교회장로들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장로들은 그에게 신학에 대해 침묵해 주면 오백 달러의 연금을 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스피노자가 여기에 타협하지 않자 교회는 그를 암살할 계획까지 세우게 됩니다. 결국 그는 유태인 교회로부터 추방령을 선고 받습니다.

 

 

 

  그 파문으로 스피노자의 삶은 가난과 고독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다행히 어떤 이의 도움으로 그의 지붕 밑 다락방에서 살게 되었는데 스피노자의 고독은 나날이 깊어져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파문으로 인해 직장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학생시절 익혔던 안경렌즈 깎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가혹한 운명의 협박 앞에서도 그는 오직 진리에 마음을 열고 그 뜻대로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내가 진리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 두어라.”였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진정한 철학자로서의 신념으로 가득 찬 이였습니다. 겸손했으며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았던 그는 혹독한 상황에서도 진리에 대한 신념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러한 의로운 태도는 또한 당시 맹신을 강요하던 유태인 교회와 권력층의 미움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서른세 살에 그의 대표작인 『에티카』가 저술되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단 『데카르트 철학원리』와 『신학적 정치적 논고』 이 두 저서가 명작의 빛을 알아보는 이들에 의해 여러 곳으로 팔렸습니다. 이로써 스피노자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게 되고 그를 도와주고 존경하게 된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또한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다음에 출판할 저서를 자신에게 바친다면 거액의 연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스피노자는 “나는 나의 책을 오직 진리 앞에만 바치겠습니다.”라는 말로 순수한 신념을 돈과 바꾸지 않았습니다.

  스피노자는 그를 돕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충분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늘 생활에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은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늘 검소하게 자신의 생업에 충실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업이었던 안경렌즈 세공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안경렌즈를 연마하면서 오랫동안 마신 유리 가루가 죽음의 원인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빛나던 보석과 같은 45년간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삶에는 마치 구도자를 연상시키듯 바보스러우리만큼 순수하고 진실한 모습이 있습니다. 마음을 조금만 돌렸다면 그는 파문되지 않고 부를 얻을 수 있었고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 자리를 얻어 안정된 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자신이 추구하던 진리와 자유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미련 없이 마다했던 것입니다.

  진리는 순수한 신념의 실현 속에서 강한 생명력을 얻는 듯합니다.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그리고 진리를 실현코자 한 스피노자의 지성은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여러 학자들에게 깊은 영감과 학적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듯합니다.

 

 

 

참고문헌

바뤼흐 스피노자,『에티카』, 조현진 역, 책세상, 2009.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서양철학사』, 이문출판사, 2007.

이진경,『철학과 굴뚝청소부』, 그린비, 2002.

강성률,『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 푸른솔,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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