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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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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야기 : (92) 삼일포 암파(暗破)전설

(92) 삼일포 암파(暗破)전설

글 교무부

 

  해금강 삼일포(三日浦)의 북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몽천(夢泉)이란 샘이 있다. 이곳은 삼일포에서 배를 타고 놀던 유람객들이 갈증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즐겨 찾던 장소였다. 여기에는 신라 말기에 세워진 몽천암(夢泉庵)이란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어 지나간 세월의 흔적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몽천암 뒤쪽으로 꽤 널찍한 둔덕이 있어 이쪽으로 가다 보면 여기저기에 집채 같은 바위들이 뒹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바위는 서서 기웃거리는 것 같고 어떤 것은 팔자 좋게 누워 있는 형상이며, 또 어떤 것은 양반처럼 점잖게 앉아 있는 모양이다.

 

▲ 봉래대에서 바라본 동해

 


  이렇게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을 보면서 언덕길을 따라 100m쯤 오르면, 큰 바위 두 개가 마치 부채를 펼쳐놓은 것 같은 바윗돌을 머리에 인 채 나란히 서 있다. 이 바위의 높이는 5~6m, 너비는 1.5~2m, 안쪽의 길이가 4~5m 가량 되며, 이마에는 ‘石扇(석선: 돌부채)’이라 쓰여 있고 가운데에 좁은 문이 나 있다. 반듯하고 우람찬 이 문을 지나면 삼일포의 또 다른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금강문(金剛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주변에도 큰 바위들이 많지만 유난히 큰 두 개의 바위가 양쪽에 수문장처럼 나란히 있고 그 위에 널찍한 바위가 지붕처럼 얹혀 천연돌문을 이루었기 때문에 석비(石扉: 돌문)라고도 불렀다. 이것이 금강산 경내의 8개 금강문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삼일포 금강문’이다. 막혀 있던 바위가 어느 해인가 홍수에 떠밀려 마치 고인돌처럼 구멍이 뚫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강문을 나서면 삼일포의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며 의좋게 서 있는 해금강의 작은 섬들이 금세 손에 잡힐 듯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다. 섬에는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그 위로 백로들이 날아들어 바다의 풍경을 더없이 멋지게 해준다. 남강하류 바다 기슭에는 보초병처럼 우뚝 솟아난 대봉과, 영랑호와 감호를 양팔에 끼고 앉은 구선봉(九仙峰)의 숭엄한 모습이 뽀얀 안개 속에서도 뚜렷하게 다가온다. 왼쪽 봉우리들을 쳐다보면 여기서도 기암괴석들이 조화를 부려 작은 만물상을 이루고 있는데 복숭아바위, 원숭이바위, 곰바위가 유별나게 눈에 뛰며 그 아래 기슭에는 사자바위가 서 있다.

 

▲ 삼일포에서 바라본 금강산

 


  구룡연의 바위들이 주로 널판자형이고 만물상의 바위들이 기둥형, 총석정의 바위들이 각추형이라면 삼일포의 바위들은 둥근형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러하다. 금강문의 바위들도 다 둥글둥글한데, 발밑을 유심히 살펴보면 옛날 사람들이 새겨놓은 듯한 글자들이 거꾸로 되어 있는 길쭉한 바위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1944년에 금강문 뒤에 서 있다가 천둥소리와 함께 굴러 떨어지면서 조국의 해방소식을 전해주었다는 “암파(暗破: 어둠이 깨어지다)”전설이 깃든 바위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일제 통치가 가혹하던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이다. 금강산은 아직도 흰 눈에 덮여 있어 개골산(皆骨山)으로서의 기이하고 장엄한 모습을 한창 자랑하고 있을 때였다. 밤도 깊어 사람들은 하루의 고된 노동의 피곤함을 풀려고 잠자리에 누웠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휘영청 밝게 뜬 보름달이 눈 덮인 해금강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극성스럽게 불던 바람도 멎고 갈매기들은 보금자리를 찾아 잠들었는지 바다마저 조용했다. 때때로 “쏴~” 하는 파도소리가 잠든 바닷가 마을의 고요를 깨뜨리며 이따금 들려올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이 고요한 마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태풍이 불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청천벽력이라더니 엄동설한에 뇌성(雷聲)이 울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천재지변이 생기면 인간세계에도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믿어 왔다.


 

▲ 솔섬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강한 섬광이 삼일포의 금강문 쪽으로 비치더니 다시금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바위가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삼일포 쪽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게로군!”
  사람들은 모두 걱정스러웠지만 이 캄캄한 밤에 온정령에서 불어오는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무릅쓰고 그곳에 가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날 아침, 맑게 갠 날씨에 갑자기 불어오던 설한풍(雪寒風)도 잦아져 겨울치고는 한결 따사로웠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모두 간밤에 번개 치던 삼일포 쪽으로 몰려갔다. 많은 사람이 몽천암 터 뒤편의 금강문으로 들어갔더니 집채만 한 바위의 일부가 갈라져 밑에 떨어져 있었다.
  “세상에, 이 바위가 벼락을 맞은 모양이네요.”
  사람들은 처음에 이렇게 생각하고 떨어진 바위를 두루 살펴보았다. 옛날 양반들이 이곳에 놀러 왔다가 새겨 넣은 이름들이 거꾸로 서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금강문 쪽에 있던 어떤 사람이 소리쳤다.
  “여기에 처음 보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누구 글을 아는 사람 없습니까?”
  사람들은 그 말에 문 앞으로 몰려갔다. 분명 그것은 새로 새겨진 글자였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건가요?”
  한 사람이 성급하게 물었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발돋움을 하면서 목을 길게 빼들고 신기하다는 듯이 새겨진 글자를 눈여겨볼 뿐이었다. 그중에 글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하늘의 조화라고 믿었다. 한겨울에 뇌성벽력이 있었다는 것도 범상치 않은데 번개 친 곳에 글자까지 나타났으니 더더욱 기이한 일이었다. 모두 머지않아 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 해금강

 


  “그렇다면 저 글자의 뜻을 알아야 할 게 아니겠소?”
  마을 사람들은 애가 탔다. 그 글이 불길한 뜻인지 아니면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들의 앞날에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는 것인지 어서 빨리 알고 싶었다. 설혹 그것이 불길한 징조라고 하더라도 그들로서는 두려울 게 없었다.
  “지금보다 못할 게 뭔가?” 하며 어떤 사람들은 배짱 좋게 서 있었고 어떤 사람은 저건 분명 우리에게 살길을 알려주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저마다 자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 노인이 진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살길이 열린다는 뜻인 듯하오.”
  모두의 눈길이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노인에게 쏠렸다. 뭐라고 썼기에 노인장이 그렇게 말하나 싶어서 옆에 있던 노인이 빨리 속 시원하게 말해달라고 졸랐다.
  “암파(暗破)라고 쓰여 있소. 어두울 암(暗) 자에 깨어질 파(破) 자니, 이는 곧 어둠이 깨지고 광명이 온다는 뜻이오.”
  노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해졌다. ‘암파라 … 어둠이 깨어지고 광명이 온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노인의 말을 되뇌어보았다.
  “이것은 왜인의 통치가 끝나고 우리나라가 광복한다는 뜻인지도 모르오. 하늘이 알려주는 상서로운 예언이니 왜인들은 틀림없이 망할 것이오!”
  노인은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 노인의 글자풀이를 듣고 몹시 흥분했다. 어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모두가 기쁨에 겨워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암파에 관한 이야기는 날개 돋친 듯 삽시간에 금강산 전체에 퍼졌다. 이튿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암파라는 신기한 글자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소문이 어찌나 빨리 퍼졌던지 기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 고성역에서 내려 삼일포 금강문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삼일포는 호수의 절경으로 보통 여름철에 성황인데 눈길을 헤치고 얼음장처럼 굳어진 호수를 가로질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건 삼일포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약삭빠른 장사꾼들은 이번 기회에 몽천암 터에 간이상점과 음식점을 차려놓고 돈벌이에 바빴다.
  더욱 바빠진 것은 왜인들이었다. 뒤늦게 그 내막을 알게 된 일본경찰들은 급기야 경관을 파견하여 ‘暗破(암파)’라는 글자를 깎아버리고 사람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느라 일대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글자가 지워진 뒤에도 그것의 흔적이라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그들 모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와 함께 조국광복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암파’라는 글씨가 새겨졌던 금강문과 벼락 맞은 바위 주변을 몇 번이고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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