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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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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의 만남 : 가을을 닮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가을을 닮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연구원 김대현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어울리는 덴마크의 종교사상가이자 철학자입니다. 영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소심한 면도 있는 그는 홀로 낙엽을 밟으며 사색하는 고독한 철학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 모습처럼 그가 외쳤던 단독자(單獨者)의 사상은 외롭지만 자신을 찾는 아름다운 가을여행의 여정과도 같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그의 사후 20세기는 격변기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많은 관심을 끌게 됩니다. 철학사에서 그는 니체와 함께 실존철학의 시조로 평가되는데, 독일의 야스퍼스(K. Jaspers)와 하이데거(M. Heidegger) 그리고 프랑스의 발(J. Wahl)과 마르셀(G. Marcel) 같은 사상가들은 그를 현대 실존주의01 철학의 선구자로 인정했습니다. 또한 카프카, 카뮈,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철학을 크게 ‘단독자와 불안’ 그리고 ‘실존의 3가지 모습’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단독자와 불안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는 내면의 힘과 독자적 의지로서 실존하는 즉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을 표현한 말입니다. 단독자는 세상에 던져진 고독한 존재이자 자립적인 개체로서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이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어떤 보편적인 기준으로 삶의 형태를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이 절대자인 신(神)에 의한 것이며 타인의 개입이 아닌 단독자 스스로의 힘으로 신의 절대성과 대면하는 것이 궁극적인 실존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존의 삶은 인간의 내면성 즉 정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와 삶은 내면성 곧 정신이며 시간 속에 홀로 던져진 인간이 그 정신을 궁극적인 가치 즉 신성과의 합일이라는 최종적인 경지까지 고양할 때 단독자로서의 실존의 삶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고양시키는 힘과 동기는 불안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불안을 겪습니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이 불안은 인간을 이끄는 실존의 등불입니다. 이성적인 법칙이나 경험적인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영혼성에 가장 가까운 살아있는 진리를 향한 계기를 이 불안이라는 기분 속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입니다. 수많은 선택의 조건 앞에서 번민하며, 결핍되고 모순된 세상 가운데서 인간은 불안해하지만 이것 자체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다양한 환경으로 변화하는 세상과 그 역동하는 세상의 파도 한가운데서 일렁이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자유 가운데 놓인 인간은 불안해하면서도 드높은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정적이고 경직된 존재가 아닌 변화하는 세상과 어울려 한 편의 아름다운 변주곡을 펼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듯 인간은 그러한 세상의 파도 가운데서 삶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지만 어떤 공통된 악보나 정해진 방식이 없습니다. 오직 독립된 자신의 삶이 곧 악보이며 연주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나아가 자유의 파도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불안을 극복한 궁극에 이르러 단독자의 자격으로 신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실존의 3가지 모습

 

  키에르케고르는 시간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즉 현실을 사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통찰하여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심미(審美)적 실존의 단계로서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실존의 모습입니다. 심미적 실존으로서의 인간은 일렁이는 욕망의 불꽃 가운데 자아의 주체적 존재성을 구축하지 못한 실존으로 단독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선택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순간적인 쾌락만을 좇으면서 그 욕망의 충족 뒤에는 늘 불안과 마주하는 정체성 없는 개인일 뿐입니다. 두 번째는 심미적 실존으로서의 인간이 불안을 극복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윤리적 실존의 단계입니다. 자기반성을 통해 인간은 양심과 행위의 가치를 규정짓는 보편적 기준을 추구하게 됩니다. 도덕적 의무와 보편적 이성의 법칙이 이루어 놓은 질서정연한 삶을 사는 실존의 모습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의 실존이 겉으로 보기에는 바람직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윤리적 실존의 삶은 표면적인 균형을 이룬 것일 뿐, 모순 없는 절대계를 향한 생동하는 날갯짓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의 가장 이상적인 단계로 종교적 실존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신적 절대성을 향한 단독자의 신앙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단독자는 윤리적 실존의 보편적 가치나 사회적 통념이라는 표면적 틀을 떠나 독립적이며 고유한 실존의 자격으로 절대적 가치로서의 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궁극적인 자유를 누리게 되는데, 윤리적 실존에서 서로가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자유와 윤리적 형식이 종교적 실존에 이르러 절대자 속에서 자유의 본질로서 종합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껍질로서의 형식을 억지로 흉내내는 것이 아닌 알맹이로서의 생동하는 내면의 힘이 신의 뜻과 합일하여 그것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삶을 사는 것이 종교적 실존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사상을 통해 그 시대의 종교와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당시 의례와 형식에 얽매인 그리도교의 신앙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와 권력의 결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개인의 내면적 신앙을 지향했습니다. 사회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도로써 인간을 획일화시켜 고유한 개성을 지닌 개인의 자발적 힘과 주체적 가능성을 잃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우려했습니다. 

 

  현실을 사는 인간은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며 자기 삶의 해답입니다. 따라서 한 그릇의 물이라도 타인에게 쉽게 의지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의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기 내면을 가꾸고 고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는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써만 가능한 자신만의 행복한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는 한 개인 속에서 우주적인 가치와 완전성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당시 그리스도교의 권위는 형식을 강조한 일방적인 방식으로 신도들을 거느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권위와 그로부터 형성된 신앙의 틀이 오히려 믿는 자들의 종교적 잠재력과 역량을 억누른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독자, 즉 이미 우주적 가치를 가진 개인이 자기 내면의 종교적 힘을 발현하여 신 앞에 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결국, 각각의 인간은 그 완전성을 향한 출발지점은 서로 다르겠지만 신성과의 합일이라는 공통의 실존적 목표와 그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모습이 보잘 것 없더라도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를 소중히 여겨 자기 내면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과 그것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에 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신을 향한 공통의 운명 가운데 놓인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모두가 똑같이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01 19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가 야기한 전체성과 개인으로서의 인간적 삶의 가치에 대한 소외에 반대하여,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 개인의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그 개인이 가진 주체적 존재성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자 하는 철학. 19세기의 키르케고르와 니체, 20세기 독일의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프랑스의 마르셀과 사르트르 등이 대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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