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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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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이미 시작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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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되었으니
 
 
 

금사2방면 교정 허경

 
 
 
#1. 곤충을 괴롭힌 사나이
 
  수많은 여름을 보내오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는다. 한여름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저 매미는 귀가 따갑지도 않을까. 왜 7년을 땅속에서 살다 고작 일주일을 울고 가는 것일까. 매미 일생에 대해 알고 나면 그 따가운 울음소리를 더는 꾸짖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 매미는 땅속에서 7년 동안 도대체 무얼 하고 나오는 것일까. 소년의 궁금증엔 해답이 없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지금 이 시각 땅속에도 7년 후의 비상을 꿈꾸는 매미들이 있겠지. 지난해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그 후 내년에도…….
  어리석은 의문은 또 있다. 매미가 힘겹게 벗는 저 허물을, 1년에도 수차례 벗어내는 뱀의 긴 허물을 내가 벗겨주면 어떨까? 어차피 벗어야 할 허물이라면 누가 벗겨주어도 상관이 없으랴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살갗과 허물은 민감하게 밀착되어 있다. 허물이 되어버린 매미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혀가 빠진 뱀은 자신을 두고 간 몸을 바라보며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어느 여름, 용기 있는 어린아이가 허물을 벗고 있는 매미를 도우려고 그 허물을 벗겨주었다. 결국 그 매미는 죽고 말았으며, 매미를 위해 용기를 냈던 어린아이는 곤충을 괴롭히는 나쁜 아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신의 허물은 오로지 자신이 벗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는 손에 든 사진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당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의 푸들 머리를 한 어머니와 감색 정장을 오픈한 갈색 가죽구두가 돋보이는 아버지. 그리고 80년대 스텔라. 스텔라는 택시였다. 택시를 운전하고 가는 길에 잠시 내려 사진을 찍어줬을 택시기사 아저씨. 택시기사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속에 내가 있다. 한 손에는 뜯어진 과자봉지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내 어깨에 올려진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한 채 어머니 앞에 서 있다. 카메라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며 굳게 서 있다. 무엇을 보고 있었던가. 그런 내 옆에 빨간 스웨터를 입은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녀가 서 있다. 그녀는 과자봉지를 쥔 내 손을 곁눈으로 보면서 아버지 앞에 살짝 기대어 섰다. 내 손을 잡으려 했던 것이었을까. 그녀의 손이 조심스레 내게로 뻗어있다. 하지만 나는 과자봉지를 뺏기기 싫은 아이처럼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겁 많은 네 살 남자아이와 생각이 많은 여섯 살 여자아이가 팔짱을 꼭 낀 30대 젊은 부부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이 순간을 찍어준 택시기사 아저씨는 어디로 가고 있던 것이었을까. 아쉽게도 나는 이 사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유일하게 남은 가족사진이다. 지난 설날 외가에 갔을 때 두 장 있던 똑같은 사진을 그녀와 내가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어머니의 손도 그녀의 손도 잡지 못했던 네 살 꼬마는 어느새 자라 프리랜서 강사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 말(語)을 하며 밥을 벌어먹고 살게 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상쾌한 공기를 코로 가득 들이켜 신선한 공기를 가슴으로 한껏 불어넣을 때의 기분. 아침 일찍부터 암컷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수컷 구피들의 구애 활동을 보면 오늘 하루도 활기차다. 잦은 출장으로 집을 오래 동안 비워도 꿋꿋하게 헤엄치고 있는 구피들이다. 구피들에게 먹이를 줬다. 구피들은 알까.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며칠 전 얕은 어항에서 높이뛰기를 하던 구피는 마른 멸치가 되었다. 물고기는 물 밖을 나가면 끝이다. 하얀 식빵에 뻑뻑한 땅콩 잼을 듬뿍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 땅콩 잼 샌드위치와 우유만 있으면 아침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뻑뻑한 땅콩 잼이 입안에서 고소하게 울려 퍼졌다. 고소하게 울려 퍼지던 식빵이 순식간에 마른 건빵처럼 뻑뻑해졌다. 목이 메었다. 잊고 지냈던 시간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머니의 편지, 아버지와의 추억. 그녀와……. 그녀와 사이좋게 찍은 어린 시절 사진들. 돌아가신 두 분보다 살아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더 목이 메었다. 내게 언제 가족이 있었던가! 그녀가 집을 떠났을 때 나는 나의 누나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다시 땅콩 잼이 발린 식빵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차가운 우유를 벌컥 들이켰다.
  빈 우유갑을 접어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는 식빵이 떠난 빈 접시 옆에서 요란하게 울어댔다. 그녀의 전화였다. 전화벨은 한참을 울어댔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녀는 하루 종일 전화를 할 것이다. 전화가 끊어졌다. 하나 둘……. 셋을 세기도 전에 다시 벨이 울렸다. 하루 종일 그녀의 전화로 내 폰이 울리는 것은 분명 성가신 일이다.
  “……”
나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누나야.”
  “……”
  “나올 거지?”
  그녀와 약속을 했던가. 나는 거실 벽에 걸린 달력을 봤다. 달력에는 오늘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워크숍과 호주 비자 발급 준비로 신경이 예민하던 터라 달력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진작부터 오는 문자에 답이 없으니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대면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나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일이었다.
  “너 이번에 나가면 언제 들어오니?”
  그녀는 내가 호주에 간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알고 있었다. 왠지 스토커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언제부터 나의 안부를 묻고 아버지의 기일을 챙겼던가. 그녀도 나도 자리가 잡히지 않아 제사를 모실 형편이 아니었다. 사진 속에 두 분을 생각하면 슬퍼졌다. 그리고 죄송했다. 아직 미지수인 호주 일정을 섣불리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그녀가 말했다.
  “12시까지 서울역으로 나와. 늦지 말구.”
  “응.”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당신이나 늦지 말라며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내게 마지막 울타리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믿음은 큰 착각이었다. 이 순간 그녀와 같은 하늘, 같은 땅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두 분께 자랑스럽고 싶은 나로서는 심각한 수치였다. 그녀는 나를 배신함이 틀림없었다. 그런 배신자가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난다. 두 분을 따라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배신감보다 기일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더 생각하며 샤워를 하고 양복을 꺼내 입었다. 다음 달 호주로 떠나면 한동안 못 들어올 상황이라 생각하니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익숙하지 않은 길을 혼자 찾아갔다가는 헤매기 십상이었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하는 수 없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갈색 가죽 구두의 아버지는 청년 시절 연예인이 되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방을 구하지 못해 다시 내려왔다며 아버지보다 일곱 살 어린 사촌 형이 말해주었다. 멋을 알고 풍류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사촌 형과 함께 여행을 곧잘 다녔다고 했다. 그분의 피를 물려받은 나도 여행이 좋았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나를 어둡고 우울하게 만드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는 문화생활은 물론 여러 가지 정부나 기관에서 주는 혜택을 손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호주로 가는 일정도 그 혜택의 일환이었다. 여하튼 그녀와 서울에서의 만남은 정말 끔찍했다. 그녀를 정식으로 만난 것은 십여 년 만이었다
  그녀는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반겨주려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달갑지 않았다. 단발머리에 흰색의 하늘하늘한 티셔츠를 입고 있어 마치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그러나 커 보이는 눈과 다홍빛 입술이 그런 어린 이미지를 벗겨주었다. 그런 단정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그녀에게는 늘 친구가 많았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을 나갔다. 손주 녀석이 행여나 올까 밤새 잠 못 자고 기다리는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그녀에 대해 심한 애증을 키워왔다. 그러던 그녀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노란색 손가방 사이로 열차표가 보였다. 내가 애증을 키워간 시간 동안 그녀는 생각보다 잘 지낸 것 같았다.
  “점심은 먹고 왔니?”
아침에 샌드위치만 대충 먹고 나왔으며 점심은 아직 못 먹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못 먹었구나? 저기 분식집 가서 김밥 좀 사 올게”
그녀가 열차표를 맡기고 분식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열차표에서 열차번호와 좌석을 확인했다. 00열차 18호 차 2A 번과 2B 번. 그녀의 걸음은 생각보다 빨랐다.
  “시간 다 됐지. 어서 가자.”
  김밥 봉지를 든 그녀와 표를 든 나는 열차를 향해 뛰었다. 열차 안의 지정된 좌석에 나란히 앉은 자리가 못내 불편했다. 그녀도 어색했던지 김밥을 꺼냈다. 나에게 김밥 한 줄을 건넸으나 나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아직은 그녀가 제안하는 것을 순순히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주려던 김밥을 자신의 입안으로 넣으며 말했다.
  “너 여자 친구는 있니?”
  “……”
  “너라도 자리를 잡아. 그래야 부모님 제사를 모셔.”
  “……”
  나도 아는 사실이다. 지난달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었으나 또다시 해외로 나가려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떠나버렸다. 나는 나의 한계와 굴레를 깨고, 새롭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와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내가. 꿈꾸던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2시간 반 만에 부산역에 도착한 그녀와 나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목적지에서 내렸다. 지금이야 금정산 둘레 길로 유명해져 산악인들이 자주 오는 곳이 되었지만 당시 아버지와 함께 왔을 때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 지난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30분쯤 걸었을까. 그녀의 이마와 콧등에는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조용한 줄만 알았던 산길 주변 계곡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더위를 식힐 겸 피서를 온 가족도 있고 선명한 색깔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도 삼삼오오 지나갔다. 시원한 산바람이 잠깐 불어오더니 요란한 매미소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지난날 허리 굽은 할머니가 당신의 아들이 공양하고 정성 들이던 곳이라며 어린 손주들보다 더 빨리 오르던 그 길이었다. 그 길을 걷던 할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왔다. 진리가 샘물처럼 솟아난다고 해서 법천사(法泉寺)였던가. 할머니가 몰래 흘린 눈물은 흘러가 바다를 이루었다. 할머니의 바다에서 그 여자와 내가 유유히 떠돌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바다가 고통으로 이루어진 바다였다는 것을.
  법천사 입구에 들어서니 큰 느티나무와 오래된 우물, 식당 건물……. 석조여래상, 계단 입구에서 법당을 지키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과 함께 하나 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날 아버지가 절에 요양 와 있으면서 처사로 있을 때였다. 아버지와 함께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야외에 계신 관세음보살께 부디 우리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점심시간에 먹을 애호박을 땄다. 밥 먹는 일을 절에서는 공양 받는다고 했다. 그날의 공양을 기억한다. 애호박 전은 물론 생선과 두부구이가 참 맛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와 어떤 추억이 있을까.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화창하게 맑은 하늘, 우거진 나무 위에 매미가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듯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맴맴맴맴 매에 엠…….
 
 

  그 여자와 나는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을 뵀다. 부처님께 물었다. 왜 어린 저희를 두고 데려가셨습니까. 듣고 싶었다. 왜 그렇게 빨리 어머니와 함께 하게 하셨는지. 액자 속에 아버지도 금불상의 자비로운 부처님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엄한 분이셨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주로 매를 드셨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하루는 그녀가 친구들이랑 노느라 학원을 가지 않던 날이었다. 친구랑 놀고 온 그녀는 어머니가 학원 갔다 왔냐는 물음에 거짓말을 했다. 그날 밤 방문이 잠긴 안방에서의 비명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나는 거짓말은 못 할 짓이라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분이셨다. 친구들과 늦은 밤 동안 풍류를 즐기셨던 아버지를 기다릴 때는 두 어린이를 재워놓고 가계부를 정리하거나 책을 읽으셨다.
  그녀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셨다. 밤새 배가 불러오면서 발견한 큰 덩어리를 두 개나 떼내야 했기 때문이다. 청바지 CEO 스티브 잡스도 7년 만에 데려갔다는 그 발생률은 낮고 사망률은 높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복부 깊숙이 위치한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능과 췌장액을 분해해 소화를 돕는 소화 기능을 모두 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진단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조기 진단이 가장 중요한 췌장암 환자에게는 너무나 좋지 않은 부분이었다. 조기 진단 시기를 놓친 어머니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 기도를 하며 1년의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달리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세계를 알았다. 내 나이 아홉 살.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였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바닷물을 모으셨다. 할머니가 지어준 엉긴 삼베옷을 입고 꿈인지 생신지 모르는 바닷속을 경험했다. 그해 그녀와 나는 엉긴 삼베옷을 두 번이나 입어야 했다. 어머니가 가신 하늘을 바라보던 아버지도 한 달을 견디다 그렇게 따라가셨다.
 
 

  금정산 산자락의 맑은 바람과 산새들의 지저귐이 날아왔다. 나는 수각 가까이에 있는 약수를 한 바가지 마셨다. 19년 만의 재회였다. 19년 전 약수를 건네주던 아버지는 없었다. 약수를 마시고 아버지가 머물렀던 요사채로 가보았다. 아버지가 쓰던 방에서 남자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의 기침소리에서 아버지를 느껴보고 싶었다. 아버지……. 행복한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 드리면 생존율이 올라간다는 위암. 병실에서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서웠다.‘아빠가 아빠 같지도 않느냐’하시는 아버지의 호통에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고 할머니의 바다는 그렇게 깊어만 갔다. 할머니는 막내아들자식들을 거두기 위해 집 근처로 오는 약장수를 따라다녔다. 약장수한테 다녀오면 휴지와 치약, 주방세제를 받아왔다. 나는 할머니가 구질구질하게 받아오는 물건이 싫었다. 내가 공짜로 학원을 다닐 수 있게 원장 선생님한테 부탁하는 것도 싫었고, 정체 모를 된장 국도 싫었다. 굽은 허리에 좋다는 닭발 고는 냄새도 싫었고, 약을 먹을 때 기도하는 모습도 싫었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그녀와 한 방에서 자는 것도 싫었고, 할머니가 밤새 읊는 염불소리도 싫었다. 더군다나 새 학기가 될 때마다 가정조사하는 학교가 싫었고, 점점 교복이 짧아지는 내 몸이 싫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깊어가는 할머니의 바다에서.
  그런데 나보다 그녀가 더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식만 남겨 둔 채 집을 나갔다. 그렇게 나의 울타리는 무너졌다. 무너진 울타리를 다시 고쳐 세우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려야 할까. 예전에 기대했던 그 울타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그녀는 그녀의 울타리를 나는 나의 울타리가 잘 만들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그녀가 눈을 감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고 있을까 어머니를 만나고 있을까 아니면 할머니 품에 안겨있을까. 그녀의 감은 눈에서 물이 죽 흘렀다. 나는 또 한 번 놀라운 문명의 속도를 체험했다.
 

#2. 달을 향한 기도
 
  그래요. 지금은 허물을 벗는 시간입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전한 나무 위로 올라가 앞발의 발톱으로 나뭇가지를 꽉 붙잡아가면서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날개를 펼쳐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캄캄한 흙길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눈이 밝은 광선을 감당해야 하는 시력으로 앞이 훤해질 때까지 등껍질을 벌려 속에서 성장해 온몸을 내보내야 하는 시간이지요. 몸 안의 물기로 잔뜩 부푼 희다 못해 푸른 속살을…….
  그저 귓가에서 앵앵거리며 맴도는 모기가 들어온 창문을 닫으려다 우연히 달을 보았던 것뿐입니다. 새카만 밤하늘에 높이 뜬 크고 둥근 달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저 달에게 내 소원을 빌어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고 말았지요. 보름달이 뜬 깊은 밤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 떠 올려놓고 두 손 곱게 모아 떠난 님 무사히 돌아오길 소원하고 득남을 바라는 조선 여인네처럼……. 나는 당장 깨끗한 새 대접을 찾아 맑은 생수를 떠서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옥상에 나란히 줄지어 있는 된장 단지 중에서 키가 제일 큰 단지 위에 정화수 그릇을 올려놓습니다. 이만큼의 대접으로 저 큰 달빛을 다 담을 수 있을지 좀처럼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과연 내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있을지 말이에요. 하늘을 덮은 구름과 어두운 시력으로 흰 달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쯤 펜을 들어 일기를 쓰고 있을 테지요. 민트색 다이어리에다 마음 한 모퉁이에 숨겨둔 감정을 쏟아부으려 까만 펜을 들고 써 내려가고 있을 테지요. 꽁꽁 숨겨둔 마음이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가 되어 떠오를 때까지요. 그것이 찢기는 한 장의 종이 쪼가리가 될지라도……. 그럴지라도 저는 당신을 닮았나 봅니다.
  정화수 그릇 안에 달빛이 모여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고작 두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그릇은 우주로부터 오는 하얀 정기를 좀처럼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릇 겉면의‘복’이라는 한자(漢字)로 쓴 글자 마크가 가로등에 비쳐 반사할 뿐 달빛이 모여드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르르 달빛들이 흩어져 내리고 있을 테지만, 저의 미욱하고 조급한 두 눈이 감지하기에는 그 입자가 너무나 투명합니다. 달빛들이 스스로 모여 담길 때까지……. 이렇게 마냥 된장 단지 위에 올린 정화수 그릇을 바라보며 두 손바닥만을 마주한 채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나는 기어이 정화수 그릇을 손으로 모아듭니다. 모은 두 손을 하늘로 뻗어 된장 단지보다 높은 곳으로, 내 키보다 높은 곳으로 정화수 그릇을 올려봅니다. 높이가 2m나 될까요? 손바닥으로 받쳐 든 정화수 그릇에 물이 찰랑거립니다. 찰랑찰랑 작은 정화수 그릇을 머리 위로 들고 있자니 팔이 저려오네요. 저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 팔을 뻗어 구조를 요청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다 듭니다.
 
 

  달빛들이 마침내 녹아든 정화수를 조심스레, 두 손목이 끈으로 묶인 듯이 조심스레 팔을 내려 정화수 그릇을 살포시 단지위에 내려줍니다. 그릇을 내려놓은 내 팔에 쥐가 저려옵니다. 손아귀로 팔을 주물럭거려 긴장을 풀어줍니다. 긴장된 팔에 피가 몰려 불거지도록 꾹꾹 눌러가면서 셀룰라이트들이 비명을 지르도록 손가락으로 늘어뜨리면서… 그래요. 언젠가 저에게 이러한 시간이……. 허물을 벗는 시간이 찾아오리라는 걸 나는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지난 시간을 덮고 있던 답답한 껍질을 깨며 열고 나와 새로운 운명으로 인도해주기를 기다리면서 견뎌내야 할 그 시간이 말이에요. 낮에 뽀얀 빨래가 널려 춤추던 빨랫줄에는 하얀 꽈배기만 남아있는 황량한 끈……. 그 끈을 무심히 등지고 서서 간절하게.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아 든 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제 색을 잃은 회색 건물과 그늘진 나무, 저 멀리 흘러오는 뭉게구름, 느리게 빨간 불을 깜빡이며 지나가는 비행기,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별자리의 별들, 태양이 주는 빛을 가득 품은 달, 세상으로 흩날려 내려오는 달빛……. 허물을 벗는 시간은 입었던 옷을 갈아입는 시간과 다를 테지요.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간과 도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화장을 지우는 시간과 도요, 묵은 각질을 벗겨내려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과도, 길게 자란 손톱을 깎는 시간과도, 고춧가루 낀 이를 칫솔질하는 시간과 도요. 세상이 모두 잠든 듯 조용한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 같았다면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자거나 밀린 드라마를 보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어저께도 그저께도 이렇게 옥상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을 모아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요.
  달이 자꾸만 커다란 구름에 가려집니다. 아직 지난 허물을 다 떠올리지 못했는데, 허물을 벗은 제가 잃었던 가족을 다시 만나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옥상 아래 우리 집 거실에서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 모두 모여 할머니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아요. 할머니가 어린 아버지를 키울 때 있었던 일들……. 그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듣고 같이 웃기도 하고 아버지를 놀리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를 말이에요.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면 말할 수 없는 그 하고 싶은 말들……. 그 이야기들은 고모나 큰아버지한테 듣는 이야기와는 또 다릅니다. 뭐랄까. 고전으로 전해오는 소설과 현대에 새롭게 쓴 소설의 깊이가 다르듯이 말이에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커녕 저의 어린 시절조차 들을 수 없는…….
  아무래도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지 않을 때 소원을 빌어야 달님이 들어주실 것 같아요. 달이 구름에 가려지기 전에 어서 소원을 빌어야겠습니다. 두 손 모아 고개를 들고……. 아니 아니에요. 고개는 숙이는 게……. 그래요. 고개는 숙이는 게…….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손바닥을 마주 붙이고 가슴 위로 올려 가운뎃손가락이 코에 닿을 듯 말 듯……. 그래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자세가 소원을 빌기에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아요. 눈을 감고 소원을 빌고 나면 다 이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성모마리아 상은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지만 변함없이 하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달은 제 소원을 듣고 아마도 그분에게 전해줄 것만 같습니다. 마음속의 간절함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듯……. 손바닥을 모은 두 팔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두 팔까지도 힘주었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요. 벌써 이십일 년 전이던가요? 당신이 병원에 있을 때 꼭 지금의 내 나이였으니 말이에요. 열둘이던 나는 서른넷이……. 서른넷이던 당신은 오십다섯이 되었을……. 당신이 병원에서 쓴 편지를 보내오던 날 동생과 내가 번갈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던, 암을 낫기 위해 아기 오줌을 먹는다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진다는 내용의……. 같이 해주지 못하는 당신의 아픔을 담아 쓴 편지를 읽고 그저 어머니로서 역할을 다해주지 못하는 미안함만 읽어서였을까요. 어린 내 눈에 당신이 그저 털고 일어나기를 마음으로만 빌었던 것이지요. 당시 버스도 탈 줄 모르고 암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몰랐던 저는 마냥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친척 어른들이 겨우 시간을 내서 데리고 가준 병원에서는 모자를 쓴 당신을 보았습니다. 여승처럼 민머리가 된 당신은 오히려 어린 자식들 보기 미안해했지요. 당신은 어쩌면 당신의 희망을 이미 놓아버렸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 오줌까지 먹는다는 당신은 어쩌면…….
  나는 당신이 기껏 쓴 편지를 믿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눈물로 쓴 편지지를 죄다 쭉쭉……. 눈물이 또 쏟아집니다. 얼마나 더 견디고 강해져야 아픔이 가실까요. 얼마나 더……. 어두운 밤에 옥상에 가만히 서있으려니 연극이 끝난 후 천막을 친 것 같은 적막한 기분이 듭니다. 병실에서 커튼을 친 침대에 불을 끄고 누우면 떠돌던 적막함처럼……. 나도 당신처럼 희망을 잃고 맥없이 하늘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시아버지 병수발에, 남편의 외도를 혼자서 감수해 온……. 뒤늦게 자신의 건강을 돌아본 당신은 얼마나 많은 상념의 시간을 가졌을까요? 조금만 더 일찍 자신의 몸을 살폈더라면, 진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았더라면……. 그렇게 일찍 희망을 잃었을까……. 하다못해 자식들에게 미안할 만큼……. 불쑥 변덕이 나면서 내 방으로 들어가고만 싶습니다. 내 방에 가면 따뜻한 이불 속에서 두 다리 쭉 뻗고 단잠을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인데 말이에요. 이 오밤중에 뭔 궁상이고 극성인가. 저 자신에게 짜증마저 치밉니다. 정화수뿐만 아니라 달님마저도 소용없다는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어쩌면요……. 빚을 갚는 심정으로 나는 인간이 허물을 청산한다는 백종일 달빛에 끌려 옥상으로 올라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제부턴가 당신만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역할을 다해주지 못해 미안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말이에요.
  어찌나 고요한지, 정화수 앞에 서 있는 나와 호빵처럼 부푼 달만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 같습니다. 얼마나 더 집중하고 간절하고 소원해야 허물을 벗고 나온 기분이 들까요. 당신이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원하고 원했던 것……. 그것은 혹 당신의 건강이 아니라 자식들의 미래가 아니었을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문득……. 내가 당신의 소원을 어렴풋이라도 생각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겨우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의 동생과 지나치게 행복한 아홉 살을 보낸 나머지 세상을 잘 몰랐던 저를 위해.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저의 허물을 더 생각해보아야겠어요. 하마터면 할머니와 동생에게 준 고통을 깜박할 뻔했지 뭐예요. 혹시나 내가 할머니와 동생에게 준 상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지 집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없다면 동생이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고 공부하며 할머니가 일부러 학원을 찾아다니면서 손주 녀석들 학원비를 걱정하지 않도록……. 철없는 생각이었을까요.
  지나온 그날 사라진 저를 찾느라 놀란 가슴으로 온 동네를 뒤진 할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심장이 조여 옵니다. 그래요. 염치없게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무작정 당신을 따라 집을 나온 것인지도 모르지요.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성모마리아에게 대답을 듣고 싶었는지도……. 어머니로서 당신의 자식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말이에요. 어린 자식을 두고 참다못해 병원을 찾은 당신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게……. 당신에게는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보다 먼저 중환자실을 찾아갔으니 아버지를 믿고 그렇게 떠날 준비를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요즘이야 의학이 발달된 시대에 그 정도 병세쯤은 가볍게……. 가볍지는 않겠지만, 전문의의 수술로 치료가 가능했을 텐데 당신이 젊던 시대만 해도 어디 그랬던가요. 당신이 큰 병원에 간지 1년도 못되어 손을 쓸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왔을 때는 나는 친척 어른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내 발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원으로 당신과 아버지가 왔다고 좋아했더랬지요. 참 미련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조금만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드렸다면, 조금만 더…….
  누군가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군요. 달빛을 맞으며 온몸을 펼쳐 보이면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요. 노랫말처럼 달빛 아래 춤을 추고 싶어지네요. 허물을 벗고 한층 성장한 몸이 되어 훨훨 나는 기분으로 말이에요. 이렇게 바람도 잠을 자는 하늘 위에, 밝다 못해 흰 달이 뜬 칠월 십오일 백중일에 달님을 향해 기도하면 허물을 깨우치고 바른 사람이 될 것만 같습니다. 땅속에 있던 어린 매미가 바깥 날씨를 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듯, 허물을 벗기에 불리한 날씨이면 땅 위로 올라오지 않듯 인간인 나도 허물을 벗는 때를 아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위험을 피해 해진 저녁에 나와 살금살금 나무 위로 올라가는 매미처럼……. 지난날의 딱딱한 시간을 벗기 위해 슬금슬금 올라오는 매미처럼…….
  당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여기 이곳에 있었기에 당신을 닮은 내가 당신을 대신하여 여기에 온 것은 아닐까요. 알고 보면 당신도 나처럼 허물을 벗고 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나에게 인연을 지어주려 그렇게 떠나간 것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저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상생 법전으로 심판하는 조선 명부의 판결을 받고 이미 그곳에 가 계신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이미 후천은 시작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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