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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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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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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잠실1 방면 선사 강남규


 

 
 
 
  내가 태어난 곳은 바닷가다.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아침엔 동이 트는 것을 매일 보며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예닐곱 살 경부터인가 어른들이 아직 한창 잘 시간인 새벽녘에 자주 눈을 뜨곤 했다. 모든 것이 적막한 가운데 오직 들리는 것이라곤 “철썩 쏴아…” 하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이 우주를 전세 낸 것처럼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앉아 동이 트려고 하는 수평선을 멀리서 관조(觀照)하고 있었다. 희미한 여명이 주는 시각과 청각이 잘 버무려져 나에게 다가온다. 어쩌면 모든 것이 명료하지 않은 혼돈의 세계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나의 의식도 명료하지 않다. 매일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바탕화면처럼 일상 속에서 의식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 있다.  나의 밑바탕 의식은 어릴 적 접한 자연과 그 당시 같이 놀던 또래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접한 사회·문화적 충격으로 형성되었다. 아마 이것은 원죄처럼 나의 근저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옆집에는 내 또래의 친구가 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육남매 중 다섯 째였을 것이다. 반면 나는 우리 집에서 첫째였다. 그 친구는 나보다 조숙하여 어른들이 하는 집안일을 벌써 도왔다. 우리 집 어른들은 늘 그 친구를 칭찬하셨다. 그 때마다 나는 위축되고  못나 보였다. 더구나 그 애는 공부도 잘해 우등상을 몇 개씩이나 타 와서 벽에 다닥다닥 붙여 놓기도 했다. 할머니께서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그걸 보시고 내게 와서 공부에 대한 압박을 하시곤 했다. 점점 나는 그 친구와 비교되어 열등감을 느끼면서 그 친구가 미워지기 시작할 쯤이었다.
  이웃집으로 가는 길은 담벼락으로 된 긴 올레 길이었다. 한번은 그 집으로 놀러갔다가 그 친구가 없었는지 아니면 집안 일로 바빴는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다가 담구멍에서 구슬을 발견하고는 몰래 가져온 일이 있었다. 나중에 그 친구가 나에게 ‘구슬 봤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내 마음 한 구석에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원죄 의식 같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점차 나는 원죄를 속죄라도 하듯이 무언가 착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부모님 말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점차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발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나의 본연의 모습은 점차 뒷편으로 물러서게 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옆집 아이가 잘 해서, 어른들의 성화에, 성적이 안 좋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점차 나는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는 아이가 되어 갔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좋게 되고 졸업할 때에는 우등상도 타게 되었다. 더구나 중학교 입학시험에는 전교 1등을 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는 주위에서 기대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럴수록 나의 본모습은 점점 위축되고 주위를 의식하는 인위적인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 대의 삶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천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견고한 의식은 대학교 시절에야 조금씩 균열이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뒤로 물러났던 본연의 모습이 반항의 형태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왜곡된 자아가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학 첫 미팅에서 여자와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슴보다는 머리에 의식이 많이 가 있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식적인 자아는 이성을 만나자 마치 원죄가 다시 깨어나기라도 할까봐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될 줄 몰랐다. 대학시절 그 소중한 시절은 분열된 자아가 더욱 증폭되어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그동안 자라온 환경과의 이별은 마치 고향에 애인을 두고 군입대한 신입병 같았다. 바다, 수평선, 뒤로 멀리 보이는 한라산은 마치 어머니와도 같이 친숙하고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아주었던 자연이었다. 이곳을 떠난 타향살이는 자아의식의 강화로 나타났다. 도시의 생활은 자연을 바탕으로 한 농촌의 생활과 많이 달랐다. 서로 경계하고 경쟁하고 서로 의식한다. 마음은 아닌데 말은 번지르르하게 한다. 이러한 환경은 나의 자연과 일체감을 가지고 있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 놓았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나는 방향 감각을 몰라 당황했다. 바다와 산을 보고 방향을 알 수 있었던 나는 빌딩숲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마음에 일어난 파동은 점점 증폭되어 번뇌가 되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명상 서적이나 『반야심경』과 같은 경전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속 번뇌의 불꽃은 조금씩 사그라져갔다.
  이후 나는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기 위해 무아(無我)를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내적으로 관조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하숙집도 아예 산동네의 고시원으로 옮겼다. 조그만 독방에 칩거하여 법전과 『금강경』을 번갈아 보았다. 세상은 민주화 운동으로 시끄러웠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한 평 남짓한 독방에 칩거해 들어갔다. 이때는 십 대의 삶이 내 안에 축적한 자아의식의 소멸을 위한 삶이었다. 그러나 십 대에 쌓아 놓은 자아의 추진력은 아직도 유효한 가운데 나의 이러한 노력과 평행선을 가고 있었다. 고시에 합격하여 법조인으로 사회에 진출하려는 열망과 마음공부를 하는 수도에 대한 열망이 백중한 가운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이 균형은 이십 대 말에 이르러 무너졌다. 진정한 천명에 대한 자각이 온 것처럼 삶의 목표가 확연해졌다. 그것은 도(道)였고 중생구제였다.
  나는 더 이상 내 안의 문제에 골몰하여 독방에서 칩거하는 은자가 아니었다. 마치 득도하여 속세로 돌아온 양 득의양양하여 사회로 돌아왔다. 마치 대자유인 같았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적극적이었고 철학적 담론에 밤새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관계와 처세에 미숙했다. 선의면 다 되는 줄 알고 마구 덤빈 격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다 나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선의가 오히려 오해를 낳아 원망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나는 다시 고민에 쌓이게 되었다. 나는 다시 위축되었고 어떻게 하면 사람과 서로 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골몰하였다. 이것이 오히려 사람을 대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른 봄에 나온 개구리가 꽃샘추위에 놀라 다시 급히 땅 속으로 돌아가는 격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정신과 몸이 너덜너덜해진 가운데, 나의 화두는 다른 차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전의 화두가 내 안의 문제였다면 이때의 화두는 인간과 세상이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사회는 마음이 통하는, 진심이 통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현실은 속마음은 닫아 놓고 겉마음과 말만 번지르르한 사회로 보였다. 도의(道義)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종교는 더 이상 아니었다. 도의나 진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 방법은 알지 못했다.
  삼십 대를 넘어설 무렵 나는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게 된다. 선각을 만나 도를 알게 된 것이다. 주일 날 입도식을 하게 되었다. 구령을 보는 분과 집사자께서 너무 정성스럽게 의식을 거행하였다.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주문 소리에 폭포수 같은 기운이 나의 정수리에 내려옴을 느꼈다. 의식(儀式)을 마치고 나는 세례를 받은 듯이 의식(意識)이 정화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그동안 소쩍새는 그렇게 슬피 울었나보다.”라고 한 말처럼 ‘여기에 오기 위해 그동안 나는 그렇게 방황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운 여름 한 차례 소나기로 더위를 잠시 잊듯이 나는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던 나의 본연의 모습을 잠시나마 회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온 그 많은 시간이 이 입도식의 한 순간에 응축되어 영원처럼 느껴졌다. 진실의 세계 속에서 어린 시절 동트기 전에 자연을 바라보던 나의 의식은 입도식을 하는 순간 나에게 겹쳐져 다가왔다.
  입도 후 나의 수도생활이 타성에 젖어 있을 무렵 가끔 입도식의 순간이 생각나곤 한다. 그 순간은 마치 나에게 첫사랑의 순간처럼, 에덴동산의 추억처럼 잊어서는 안 될 순수의 시간으로 내 가슴에 새겨져 있음을 느낀다. 가장 진실한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 지속되는 것이다. 진실한 가운데 영원은 순간 속으로 스며든다. 이는 무한히 펼쳐져 끝이 없이 지속되는 미래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펼쳐져 있는 현재의 시간이다. 무한을 상정하지 않은 현재의 시간은 종점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이고 종말적 시간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간이 진정으로 살아있기 위해서는 무한과 영원성이 지금 이 순간에 녹아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시간은 과거나 미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 멀리 이상이 아닌 현실 속, 내 주변의 일상(日常)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란 시 구절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01 속에 새겨져 있는 영원한 시간이다. 오늘도 나는 법수를 떠놓고 축시 기도를 모신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01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싯구로 절대자와의 황홀한 첫 만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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