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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8년(1998)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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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 도인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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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의 자녀

 

          

신상이 <평도인ㆍ비산방면>

 

  나는 소위 말하는 도인 자녀이다.

  내 스스로는 너무 좋아서 믿게 된 경우가 아니라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별다른 감정 없이 그냥 믿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제님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항상 계셨던 것처럼 그저 잔잔하게 나의 배경이 되어 주셨다. 부모님 두분 모두의 도 사업으로 인해 항상 부족한 삶을 살았고 부모님과의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난 운이 좋게도 부모님의 말씀이 믿어졌으며 잘은 모르지만 상제님이 너무 좋았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 항상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상제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커 갈수록 나도 상제님의 일꾼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서 였을까 그렇게 포덕이 하고 싶고 해야된다는건 아는데 용기가 없었다.

  공부가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에 연락소에서 청소도 하며 정말 일꾼 같은 생활을 해 보았지만 이것도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애써봐도 부모님은 부모님이지 그저 방면 선감으로 만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선감 자녀라는 입장이 더욱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었고 부모님께서 신경 쓰지 않도록 잘 지내는 것이었다.

  나는 돈이라도 벌어서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부모님께서는 대진대학교를 가라고 하셨다.

  대진대학교… 부모님께서 그리고 많은 도인들이 함께 지은 우리 대학교.

  대구에서 몇 시간이 걸려서 포천수련도장으로 참배를 갈 때면 보게 되는 장엄한 모습의 학교가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나에게는 꿈의 학교였다. 섣부른 판단으로 상업고등학교에 가긴 했지만 난 그곳에 들어가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였으며 상제님께서 도와 주실 거라고 분명히 믿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곳에 가는 것만이 나의 목표였으며 그 곳에만 가면 모든 나의 갈등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만이 나의 할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대진대학교에 들어오고 대진회에 가입했다. 대진대학교에 들어오면 뭔가가 확실하고 나의 길이 뚜렷해질 줄 알았는데 완전한 것은 없었다.

  인생은 그렇게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린 완전해지기 위해 수도를 하고 도통을 바랄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완전한 세상을 위해 오셨겠지….

  이 곳은 많은 자유의지가 주어졌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학비 걱정이 없었고, 집과 떨어진 관계로 나의 행동에 제약을 가져 다 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집에 있는 것보다 더 도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대진회가 있었다. 그리고 도장도 있었다. 이곳에도 도인 자녀가 많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 믿는 학생도 있다.

  모두들 방면도 다르고 피가 섞인 형제도 아니었지만 같은 도인이라는 그 사실만으로 나를 챙겨주고 가르쳐 주었다.

  정말 신기했다.

  대순진리회를 믿는 젊은이들이 많은 줄 몰랐으며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이 많은 줄 몰랐다.

  나는 과친구나 과의 일보다는 대진회에 애착이 갔다.

  거기엔 도인들이 있으므로 마음이 편안했으며 내가 여기 온 이유도 상제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1학년 1학기동안 나름대로 대진회 일을 해보겠다고 간부가 되었다.

  쉽지않은 대진회 활동과 공부에 대한 부담으로 2학기에는 그냥 회원으로 참석했다.

  그러다가 한 학기가 다 끝나갈 무렵 나는 깨달았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상제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대진회 일과 공부 밖에 없다.

  이제는 그것만 생각하자. 난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없다. 대진회와 공부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의 길을 정했다. 이제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방황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선배님으로부터 대진회 회장이 되어 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아무런 지식도 없고 지위고 없고 학번도 낮은 나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 당시 어려운 상황으로 봤을 때, 그만큼 대진회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진회의 간부는 많은 부담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더 많은 복이 주어진다는 걸 가슴깊이 느끼기에는 우리들은 많이 미흡했다.

  나는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은 없애고 오직 대진회와 상제님만 생각하고 싶었고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마침내 대진회 회장이 되고 어느새 한 학기가 지났다. 

  처음에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일을 배워야 했으므로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일을 배우고 방학동안에 전국 대학 대진연합회에서 동계 수련회 준비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많은 회원들과 간부들을 직접 부딪치면서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M·T, 봉사활동, 참배, 교화 등 이런 일들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회원들을 아끼고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내 마음의 그릇이 더 중요했다. 정말 어려웠던건 대진회에 아무런 애착이나 도심이 없는 학생들을 끊임없이 챙기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마음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섣부르게 결정한 것을 후회도 해보았지만 이미 난 대진회 회장이었고, 이제는 대진회와 상제님, 회원들만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그리고 나의 욕심을 버리기가 참 힘들었다. 나의 생각과 상황 모두를 대진회와 회원들에게 맞추어야 했고 행여나 나의 판단이 도에 맞지 않는건 아닌가 걱정도 했다.

  보람과 행복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고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뭔지 마음속 깊이 느끼고 실천할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선배들이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때로는 질책도 해 주었지만 정말 많이 배우고 나를 바꾸게 했다. 항상 옆에서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친구가 있고 잘 따라주는 후배가 있어서 힘이 들 때면 다시 힘을 얻었다.

  난 대진회의 존재에 감사한다. 내가 이렇게 상제님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주위의 모든 사람을 만나게 해 준 것에 또한 많은 진리를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

  그냥 무조건 믿으면 되겠다는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상제님의 크나큰 진리들을 하나씩 일깨워 주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모두 대진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와서 정말 가슴깊이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대진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한 방면을 이끌어 나가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를 있게 해주고 여기 대진대학교에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린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열심히 할 것이며 내년에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후배들을 도와줄 것이다.

  학내에 상제님의 진리를 펼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또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다.

  일단 나는 학생이고 학생은 공부가 중요하다. 대진회 일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해서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서 공부는 또 다른 상제님을 위하는 일이다. 언젠가 내가 쓰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기도 드린다. 내가 상제님의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 모두가 나중에는 상제님을 위하는 길이었길 빈다. 그리고 대진회가 활성화되고 모든 회원들이 상제님의 덕화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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