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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1년(2011)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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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천 년의 기다림, 매향(埋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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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기다림, 매향(埋香)

 


연구위원 신상미

 

  우리가 자주 접하고 있는 향은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향(香)이란 불가의 6법 공양물 중 하나로 일찍부터 모든 의례를 봉행함에 있어 가장 소중하게 생각돼 오고 신성시해 온 공양물이다. 향을 피우는 이유는 부정(不淨)을 제거하고 몸과 정신을 맑게 함으로써 신과의 소통을 꾀하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었다.01 『법화경』 「법사공덕품」을 보면 향 가운데서도 특히 침향(沈香)의 향을 ‘천상의 향기’라 묘사한 부분이 있다. 침향은 향의 한 종류로 태우면 그윽한 향기를 낼뿐만 아니라 뛰어난 약효를 가진 영약으로 알려져 예부터 보석보다 더 귀하게 여겨져 왔다. 침향의 우수한 향과 효능은 침향나무의 수지가 굳어가는 동안 생성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침향나무에 생채기가 생겼을 때 주위의 세포들이 치료를 위해 수지 함량을 급격히 늘리는데, 이때 수지가 엉겨 붙어서 굳은 덩어리가 침향이다. 침향나무의 수명은 천 년이다. 이 천 년의 세월을 견디면 고품질의 침향이 탄생하게 된다.
  침향나무 외에 다른 나무에도 수지가 생기지만 침향나무의 수지 함량이 훨씬 많은 편이기에 귀하게 여겼다. 더구나 수지 함량이 25%를 넘어 물에 가라앉는 경우는 고급품으로 인정되어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침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고 베트남 지역에만 있는 귀한 나무여서 침향을 사치품으로도 여겨 신라에서는 수입을 규제했을 정도였다. 임금과 귀족들에게도 귀했던 침향은 일반 백성에게는 더욱 접하기 힘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침향을 대신할 좋은 향을 만들고자 애썼으며, 새로운 향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현실적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여 민간신앙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민간신앙으로서의 매향의식이다.
  매향(埋香)이란 글자 그대로 향나무를 묻는 것을 말한다. 즉, 흔히 구할 수 있는 향나무를 바닷물이나 개펄에 묻어 천 년이 지난 후 만들어지는 침향으로 미륵하생 시 용화삼회(龍華三會)02에 동참하기를 비는 것을 매향의식이라 하며, 이 의식에 세웠던 비를 매향비라고 한다. 사천 매향비를 보면 사천의 지방민 4,100여 명이 모여 향나무를 묻고 비석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1999년 ‘매향 찾기 운동’이 있었을 무렵에 모악산 금산사에서도 600년 만에 매향의식을 재현하였다. 1천여 명의 불자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보니 사천 매향비를 세울 당시의 광경은 더욱 장엄했을것 같다.

  매향비에는 발원ㆍ시기ㆍ장소ㆍ단체 등이 새겨져 있다. 세운 지점은 하나같이 좋은 침향을 만들어 내는데에 최적지로 알려진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처에 자리 잡고 있다.03 매향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1309년(고려 말)의 것을 기점으로 1434년(조선 초)까지 125년 동안 매향의식은 크게 성행하였는데, 오늘날 동ㆍ서ㆍ남해 전국의 해안 곳곳에서 발견된 매향비 수는 13개04에 이른다.

  매향의식의 기점인 고려 말은 왜구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침략과 흉년ㆍ질병, 귀족들의 사치와 관리들의 부패, 불교가 타락하기 시작한 때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현실적인 위기ㆍ불안감에 구세(救世)ㆍ기복적(祈福的) 신앙형태인 미륵하생 신앙을 믿으며 종교적 구원을 받고자 하였다. 향을 공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향 하나에도 흔히 구할 수 있는 일반 향을 쓰지 않고 정성스레 만든 귀한 향을 공양하고자 매향의식을 하게 된 것이다. 
  백성들은 향나무를 묻으면서 천 년의 긴 세월을 견디며 세상을 고칠 명약으로 태어나길 기대했으며 먼 훗날 그 향나무에 서린 천 년 세월의 향이 미륵세계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대과학으로 보면 그저 ‘땅속에 오래 묻힌 나무’일뿐 진짜 침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렇듯 현대에는 매향의식이 부질없는 일로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의식 속에 약속한 천 년 세월의 기다림은 침향의 그것보다 더 깊은 향기를 인간의 마음속에 품게 한다. 그것은 미륵하생에 대한 믿음과 용화삼회에의 동참에 대한 백성들의 신념에서 피어난 향내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 우왕 13(1387)년 8월 여름에 세워진 사천 매향비에 “행(行)과 원(願)이 반드시 서로 도와야 비로소 무상묘과(無上妙果)05를 구하게 되니, 행이 있으되 원이 없으면 그 행은 필시 외롭게 된다. 원이 있으되 행이 없으면 그 원은 반드시 허망한 것이라. 행이 외로우면 그 맺음은 없는 것이며, 원이 허(虛)하면 복이 떨어지므로 행과 원이 함께 움직여야만 비로소 묘과(妙果)를 얻는다. 그리하여 소승(小僧)이 향도(香徒)06 천인(千人)과 더불어 대원을 발하여 침향을 땅에 묻어 미륵보살이 하생하여 용화삼회하기를 기다려서 그 증명을 보려고 향을 봉헌공양하고 미륵여래가 오실 것을 염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07 이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백성들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진실하고 사심 없이 미륵을 공경하여 행동으로 실천하였고, 매향을 통해 얻은 침향으로 용화세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선조들은 이무기가 천 년이 되면 용이 되어 승천하듯이, 땅속에 묻힌 평범한 향나무도 침향이 되면 떠오를 것이라 믿었다. 미륵하생을 기다리는 민중들에게 침향의 상승은 바로 새로운 세상의 떠오름이 아니었을까.
  믿음과 노력이 없는 희망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희망을 가슴 속에만 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성과도 이루어낼 수 없다. 지극한 믿음과 노력으로 침향을 만들어 미륵세계를 간절히 염원하고자 하였던 선조들의 마음만큼은 일심(一心)으로 도를 믿어야 하는 도인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 생각된다. 우리 수도인들은 상제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확고한 믿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에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 


 

 


01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韓國文化상징사전2』, 두산동아, 1996, pp.738∼741 참고.

 

02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연 법회.

 

03 최종례, 『미륵의 나라』, 우리출판사, 2006, p.168.

 

04 1. 평안북도 남부 정주시 정주매향비(1335년)  2. 강원(북한) 고성군 삼일포 매향비(1309년)  3. 강원도 삼척 맹방 매향비  4. 충남 당진군 해미 매향비(1427년) 

5. 충남 당진군 안국사지 매향비  6. 충남 예산군 덕산 매향비  7. 전남 영광 법성포 매향비A(1371년), B(1410년)  8. 전남 해남에 있는 장군바위 매향비  9. 전남 신안 암태도 매향비(1405년)  10. 전남 장흥 매향비(1434년)  11. 전남 영암 암각 매향비(1344년)  12. 인천 십리포 매향비  13. 경남 사천시 사천 매향비(1387년).

 

05 그 위에 더 할 수 없이 높은 열반과 같은 아주 뛰어나고 미묘한 결과.

 

06 불교신앙 활동만을 위하여 존재하였다기보다는 구성원 간의 길흉경조(吉凶慶弔), 재난구제 등의 기능도 담당하였다. 향도는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신앙단체이기 때문에 행정편제나 생산 공동체 등과는 구별되지만, 향도가 존재한 각 시기의 촌락 사회구조 및 성장과 연관되면서 지역사회의 공동체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07 주강현,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해냄, 1997, p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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