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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1년(2011)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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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한글날 특집 실험다큐 ‘말의 힘’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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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실험다큐  ‘말의 힘’을 보고

 


금릉1-6 방면 교정 김자림

 

 

 

  저는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경상도에서 자란 탓인지 평소 말투가 무뚝뚝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입니다. 경상도 출신이라서 말투가 그렇다고 하면 “경상도 사람이라도 다 너 같지는 않다.”는 선각분의 질책을 듣습니다. 게다가 수도를 하면서 내수가 말이 왜 그렇게 부드럽지 못하냐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습니다. 수반들도 제 말투 때문에 불편해 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은 데 제 말투가 저와 선후각 사이를 딱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건 확실합니다. 훈회에 ‘언덕을 잘 가지라’ 했는데 그 ‘언덕’은 말을 덕이 있게 하라는 뜻이지 말투와는 상관없다며 마음만 있으면 되지 말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이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글날 특집으로 방영된 실험다큐 ‘말의 힘’은 “언어의 힘이라는 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라고 볼 수 있지요.” 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의미심장한 한마디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매일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말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실험을 해보입니다.
  막 지은 쌀밥을 병에 같은 분량으로 나눠넣고 각각의 병에 좋은 말과 나쁜 말을 하도록 방송국 아나운서실과 일반 사무실 5곳의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병에서 일어난 변화는 신기합니다. 분명 같은 밥이고 양도 같은데 좋은 말을 한 밥은 발효된 듯 막걸리 냄새가 나고 나쁜 말을 한 밥은 시커멓게 썩어 냄새조차 맡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같은 공간에 보관을 했는데 어떤 말을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릅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말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인간 뇌의 일정 부분은 자극을 받으면 무엇인가를 할 준비를 합니다. 특정 단어는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해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움직인다’는 동사를 읽으면 뇌는 의식적으로 행동할 준비를 합니다. 단어를 그냥 접하기만 해도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는 길에 본 광고와 간판, 뉴스에서 본 것들이 우리의 뇌를 자극하게 됩니다. 이러니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가 인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 민원 상담사들은 주로 전화로 고객과 대화하는데 그 고객 중 20%가 막말을 해서 응대하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상담사 중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거나 유산을 한 상담사도 있습니다.
  특히 막말과 욕설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됩니다.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을 뒤섞어 보여준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이 부정적인 단어를 훨씬 잘 기억합니다. 막말은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변연계를 활성화시키는데 이 변연계라는 기관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활성화되는 부위입니다. 불안과 공격성 기억에 관여하는 부위가 자극을 받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에 휘둘려 욕을 들은 사람도 다시 욕을 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실제 주인과 세입자의 신경전에서 무시하는 한마디가 몸싸움으로 이어지고 살인사건으로 발생된 일도 있습니다. 욕은 곧 독입니다. 한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밝히지 않는 익명일 때 6배나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익명의 인터넷 악성 댓글에 자살하는 연예인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또 다른 실험을 보여 주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대화하는 실험을 합니다. 한 사람만 피실험자이고 나머지는 연기자입니다. 피실험자에 대한 적당한 칭찬 속에 대화가 잘 진행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변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만의 대화에 열중하자 급기야 피실험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소외감이 드는 상황은 대화의 장벽을 만들고 소통이 단절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말은 혼자서 내뱉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존재하고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방송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스스로에게 ‘진짜 이러는 내가 싫다’, ‘아이고 답답해’, ‘이럴 줄 알았어’ 같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 이런 말을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낯간지럽게 꼭 그런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수도하면서 칭찬은 자만심을 키워 수도가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수반들에게도 부정적인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니 포덕의 결과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구나 고민을 상담해 오는 수반들에게 “○내수가 그렇게 되도록 했네요.” 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무시하고 상처 주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교화를 할 때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이러니까 세상에 충효열이 없고 인간 사물이 다 재리에 빠져 진멸할 지경에 이른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사실은 상대에게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누구나 도를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 사람에게 맞는 단어를 찾으면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저는 제 말만 한 겁니다. 게다가 도인이랍시고 “말은 마음의 외침이요 행실을 마음의 자취라”고 교화를 했던 스스로가 돌아봐집니다. 과연 나의 마음은 어떤 외침을 하고 있었고 그 자취는 어떠했는지. 상제님의 말씀을, 도전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실천하지 못했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쌀밥에도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발효가 되기도 하고 부패가 되기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어쩌면 제 몸과 마음은 제가 스스로에게 한 부정적인 말들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하기 전에도 수도를 하면서도 제 주변 사람들에게 곱지 못한 말을 해서 저를 향한 공격성을 가중시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뜻하고 정감어린 대화가 없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쩌면 그것도 저의 착각인 것 같습니다. 환경이 그러니까 그렇게 교육 받아 왔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했던 것도 저의 게으름의 핑계입니다. 선각분들은 대부분 경상도 출신인데 말씀도 부드럽게 하시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잘 들어 주시는 걸 보면 경상도 사람이라 다 그런 것이 아닌 게 확실합니다. 방송을 보고 방면 교감께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교감께서도 수도하기 전에 남 이야기 듣는 게 귀찮고 말하는 게 힘들었는데 수도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를 전해야 하니 어찌 체질과 성격을 고치지 않을 수 있겠냐 하시면서 “김교정도 할 수 있어요. 단지 좀 빠르냐 늦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죠.”라고 제게 용기를 주십니다. 정말 말 한마디에 힘이 생기기도 하고 절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제 앞에 선무들한테 그리고 내ㆍ외수들한테 어떤 말을 했을까요? 수도시킨답시고 질책을 했던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마도 이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저의 심리적인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저 스스로에게도 힘을 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안 했지만 지금부터는 할 겁니다.

 

 

“난 나를 사랑해. 나도 잘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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