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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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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야기 : (91) 삼일포 몽천암전설

(91) 삼일포 몽천암전설

 

글 교무부

 

 

  금강산이 천하의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산도 산이지만 그것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그 자체만으로도 웅장하지만 탐승(探勝)코스가 바다로 이어져 있어 산은 더욱 장엄해 보이고 바다는 더 넓게 보인다. 이 바닷가의 명승지인 해금강(海金剛)은 나귀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 내금강과 외금강을 둘러본 탐승객들이 귀로(歸路)에 들러 여흥을 달래곤 하던 휴식처였다. 이 지역은 고성의 삼일포와 입석리의 해만물상, 그리고 통천의 총석정 세 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탐승코스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 삼일포(三日浦)는 외금강의 온정리에서 동남쪽으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큰 호수이다. 둘레 8km이고 깊이 9~13m인 삼일포는 예로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이름났고, 전국에서 으뜸가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호수이면서도 포(浦)라고 한 것은 옛날에 포구였던 것이 오랜 세월의 토사(土砂)로 호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 삼일포의 단서암, 사선정, 무선대

 


  삼일포는 바다 가까이 있는 만큼 주위가 낮은 산봉우리들로 편안하게 에워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국지봉(國枝峰), 남쪽으로는 구선봉(九仙峰: 일명 낙타봉), 동쪽으로는 해금강의 뒷산들이 나지막한 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먼 곳에는 외금강의 뭇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렇게 36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삼일포를 둘러싸고 있어 그 풍광의 아늑함과 전망의 장대함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그래서 영조 때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 팔도 모든 도에 호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영동에 있는 호수들만이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 중 고성의 삼일포는 맑고 묘하면서도 화려하며, 그윽하고 고요한 가운데 명랑하다.”
 
  삼일포라는 이름은 옛날 신라의 네 신선이 하루만 놀러 왔다가 너무도 좋아서 삼일을 놀다 간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 다녀간 신선은 영랑, 술랑, 안상랑, 남석랑인데 이들이 다녀간 자취는 호수 가운데의 단서암(丹書岩)에 “述郞徒 南石行(술랑도 남석행)”이라 쓰인 붉은 글씨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수에는 단서암과 더불어 3개의 섬이 정답게 이웃하여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네 명의 신선이 노닐던 정자인 사선정(四仙亭), 신선들이 춤추던 무대인 무선대(舞仙臺), 그리고 누워있는 소 모양으로 생긴 와우도(臥牛島)가 그것이다.
  단서암 꼭대기에는 또 다른 비석인 매향비(埋香碑)를 세운 흔적이 남아 있다. 매향은 부처님께 질 좋은 향을 공양하기 위해 향나무를 바닷물이나 갯벌에 오랜 세월 동안 묻어두는 고려 때의 풍속이다. 매향비는 이런 일을 기록하고 복을 비는 기원문을 적은 기념비이다. 단서암의 매향비는 1309년 강릉태수 김천호가 세운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현재는 때때로 스님들이 물속에서 그 향나무를 꺼내 썼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한편 삼일포의 전경을 한눈에 굽어보기 위해서는 삼일포 입구에서 오른쪽 계단을 밟아 큰 바위 위에 오르면 된다. 이 좋은 전망대가 장군대(將軍臺)이며 여기에 세운 각을 충성각이라 한다. 돌계단을 밟아 충성각을 내려서면 봉래대와 잇닿은 허궁다리(일명 출렁다리)가 호수 위에 둥실 떠있다. 길이 56m나 되는 이 다리는 금강산에서 가장 긴 줄다리 중의 하나이다. 이 다리에 올라서서 기우뚱거리는 몸을 바로잡고 내려다보면 거울처럼 반짝이는 호수에 하늘의 흰 구름이 담겨 있다.

 

▲ 봉래대에서 바라본 삼일포

 


  허궁다리를 건너면 장군대와 연화대 사이에 반도처럼 호숫가로 튀어나온 바위산인 봉래대(蓬萊臺)에 이른다. 이곳도 삼일포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유명한 전망대이다. 16세기의 이름난 시인이며 명필인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이곳에 와서 공부하면서 경치를 즐겼다 하여 후세 사람들이 ‘봉래대’라고 부른 것이다. 아래쪽에는 양사언이 호수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글공부를 했다는 자연굴이 있는데 이것이 ‘봉래굴’이다. 그리 깊지 않은 굴의 바위벽에는 그가 초서(草書)로 활달하게 휘갈겨 쓴 한 수의 칠언절구가 새겨져 있다. 

 

거울 속에 피어 있는 연꽃송이 서른여섯(鏡裏芙蓉三十六)
하늘가에 솟아오른 봉우리는 일만이천(天邊萬二千)
그 중간에 놓여 있는 한 조각의 바윗돌은(中間一片滄石)
바다 찾은 길손이 잠깐 쉬기 알맞구나(合着東來海容眼)

 

  붕래대에서 돌계단을 밟으며 내려오면 보트장이 자리 잡은 호숫가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한 구비를 더 돌면 왼쪽에 우뚝 솟은 흰 바위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연화대(蓮花臺)이다. 연화대는 호수에서 바라볼 때 부드러운 다섯 개의 둥근 바위가 모여 연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단청 무늬로 장식된 정자가 있고 거울처럼 맑은 호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연화대 밑의 보트장에선 보트를 타고 즐길 수 있다. 이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사선정과 단서암, 무선대를 둘러보고 건너편 호숫가의 북쪽 산기슭에 배를 대면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가운데 야트막한 산자락에 솔밭이 울창하다. 배에서 내리면 곧바로 맑은 샘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솟아올라 보트 놀이로 땀을 흘린 유람객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예로부터 삼일포에 온 사람들은 으레 이곳에서 땀을 식히면서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했다.

 

 


  유람객들이 즐겨 찾던 이 샘이 바로 몽천(夢泉)인데 본래 이곳에는 신라 말기에 세워진 몽천암(夢泉庵)이란 절이 있었다. 9세기경 신라 시대에 세워진 몽천암은 여러 차례 중건(重建)을 거듭하였으나, 숙종 10년(1684) 영동 700리를 휩쓴 큰 산불로 폐사되고 말았다. 지금 남은 것은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몇 개의 주춧돌과 계단석뿐이고, 몽천 샘물과 옆의 바위에 새겨진 ‘夢泉(몽천: 꿈에 본 샘물)’, ‘香冽(향렬: 향기롭고 차디참)’이란 한자만이 옛일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 몽천암 창건과 관계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어떤 노승이 경치 좋은 삼일포에 자그마한 절을 지어놓으면 여러모로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부자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드니 불공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일반 유람객들을 위해서 조그마한 편리를 보장해주면 수입도 클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막상 절을 지으려고 주변을 살펴보니 우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흠이었다. 우물이 없으면 여기에 절을 세운 보람이 없으므로 그는 백방으로 우물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다?’ 스님은 잔디밭에 드러누운 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으나 뾰족한 묘안이 없었다.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우물을 찾으려다 지친 스님이 잠깐 사이에 잠이 들자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울창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내다보이고 이따금 솜 같은 구름이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푸른 하늘이 안개 속에 몽롱해지더니 눈서리같이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백발노인이 안개를 타고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노승 앞에 와 서더니 왼쪽 바위를 가리키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 바위 밑을 파면 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떨어지자 백발노인은 안개와 더불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순간 노승은 매우 기뻐서 벌떡 일어나 앉았으나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스님은 곧 백발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 괭이를 들고 바위 밑을 파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석 자가량 파니 과연 맑은 샘이 보글보글 솟아올랐다. 그가 몹시 기뻐서 손으로 샘물을 움켜 마셔보니 그 맛이 향기로우면서도 매우 차가웠다.
  “몽천향렬(꿈에 본 샘물이 향기롭고 차디참)이로구나!”
  다음 날 노승은 샘을 깨끗이 정리한 후 바위에 ‘夢泉香冽(몽천향렬)’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 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샘 옆에 자그마한 암자 하나를 짓고 몽천암(夢泉庵)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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